지난 2022년 여름 ‘뉴욕타임스’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기획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들이 ‘내가 틀렸다’(I Was Wrong About…)라는 주제로 시리즈 칼럼을 낸 것이다. 당시 워낙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인사들이 스스로 잘못했다고 고백했던 터라 전 세계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자신의 전망이 틀렸다고 고백했고, 국제 문제 전문가로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다가올 중국 사회에 대한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고 인정했다.
세상은 이제 복잡한 변수들,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사고가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전망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일쑤다. 당장 새해만 해도 경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안갯속처럼 뿌옇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트럼프 후보가 당선돼서 관세 인상이 글로벌 경제의 핵심 이슈가 될지 예견하지 못했고, 국내에서는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정국불안이 소비시장을 강타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처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미래’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선 분명 예상 가능한 ‘보이는 미래’도 있다. 수년에 걸쳐서 이어지고 있는 현상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예정된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옮겨가고 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그로 인한 잠재 경제성장률 둔화, 세월이 흐르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세대교체와 주력 소비층의 변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리테일 테크의 진보 등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이러한 변화로 인한 유통시장의 영향은 ‘보이는 미래’다.
첫째,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중장기적 잠재성장률의 둔화는 단기 경기변동과 무관하게 앞으로도 ‘가성비’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것이다. 해가 갈수록 1인 가구나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이들은 특히 다른 소비군에 비해 절약소비 성향이 높은 편이다. 특히나 새해에는 고환율이나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물가 재상승 우려가 높은 상황이어서, 유통업체 입장에서 가성비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둘째, 핵심 소비층의 세대교체로 인해 나타나는 시장의 세분화도 예상된다. 과거 고도 성장기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결혼, 출산, 은퇴 등의 생애주기와 소비패턴이 대체로 유사했다. 이때는 표준 포맷을 개발해 빠르게 여러 지역에 동시에 출점하는 전략이 유효했다. 그러나 주력 소비층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MZ 세대는 결혼, 출산 등 생애주기 패턴도 서로 다르고,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로 인한 소비패턴도 다르다. 이처럼 시장이 파편화되고 있어서, 기존처럼 정형화된 표준 포맷 하나로 전 지역을 커버하는 방식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앞으로는 특정 상권의 세부 니즈에 맞게 맞춤형 포맷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이종 업태가 융합된 ‘하이브리드 포맷’과 콜라보레이션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인구구조 변화, 기술 진보 등으로 인해 편리성과 경험을 추구하는 성향이 극단화될 것이다. 한편에서는 초근접 매장, 퀵배송 등을 통해 즉시성과 편의성 니즈를 충족하고자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초대형 매장 방문을 통해 경험 욕구를 해소하고자 하는 트렌드가 강화될 것이다. 온라인 채널의 확산으로 인해 이제 앉아서도 쇼핑이 가능한 시대다. 고객이 유통매장을 찾아다니던 때와 달리 이제 유통업체가 고객들에게 접근해 가야 하는 시대다. 따라서 앞으로 오프라인 매장 트렌드는 핵심 기능을 담은 소형매장으로 접근성을 높이거나, 아니면 강력한 경험 요소를 한꺼번에 담은 타운화(랜드마크화) 매장으로 고객을 유인하는 방향으로 양분화될 것이다.
이처럼 편의성과 경험을 추구하는 성향은 테크의 발달과 함께 온라인에도 그대로 접목될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생성형 AI에 커머스가 접목된 ‘AI 에이전트(비서)’를 통해 쇼핑하는 시대로의 전환이 예상된다. AI 에이전트를 통해 대화하면서 쇼핑 외에도 여러 필요한 서비스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되면, 유통시장에 또 한차례의 지각변동이 나타날 것이다.

이마트와 스타필드 DNA가 결합된 ‘스타필드 마켓’은 쇼핑과 휴식, 문화가 어우러진 미래형 쇼핑몰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변화의 방향을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대응을 해 나간다면, 저성장 속에서도 고성장을 일궈 낼 수 있다. 지난해에도 전체 소매시장이 성장하지 못하고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렀지만, 그 속에서도 트렌드에 부합하는 매장들은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경험 요소를 강화해 출점한 스타필드 마켓, 그리고 매출 3조 원 시대를 연 신세계 강남점이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다이소나 올리브영도 가성비 트렌드를 발판 삼아 고성장을 기록했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둘러보면 희망의 빛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장석주 시인은 “희망하지 않는 자는 주저앉으나, 희망하는 자는 가슴속에 도약하고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품고 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새해 2025년에는 우리 모두 ‘보이는 미래’ 속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찾아 품고 도약을 준비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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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 상무
현재에서 미래를, 미래에서 현재를 부감하며
리테일의 변화 방향을 탐색하는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