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아메리칸 소울, 햄버거

2016/09/05

“살이 왜 쪘냐고? 왜냐면 일 마치고 나면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으니까.”

“오, 이렇게 예쁘고 멋진 음식을 만드는 당신 같은 요리사가요?”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하고 동그랗고 큰 안경을 쓴 신참 웨이트리스 제인이 주방장 제이크의 배를 보며 사연을 물었다.. 전후 사정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오래 일하고(일주일에 70시간) 잘 먹지도 못하는데(먹을 틈이 없으니까) 어떻게 살이 찌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제이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대화를 듣던 다른 요리사들은 공범처럼 눈빛을 교환했다. 그 중 미국에서 온 마이클의 눈빛은 ‘햄버거’라는 단어에 급격히 반응했다. 분명 입 안에서 침이 돌고 있을 마이클을 보며 나는 ‘저 치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미국의 배추김치, ‘치즈 버거’

영국 시골의 펍(pub)에서 치즈버거를 발견 했을 때 단 1초도 망설이지 않던 학교 친구 프랭키의 구수하고 느끼한 미국 악센트도 떠올랐다. 몇 안 되는 나의 미국 친구들은 모두 햄버거를 사랑했다. 그것은 분명 한민족에게 김치와 같은 위상이었다. 그리고 ‘치즈 버거’는 ‘배추 김치’와 비슷했다.

아이언맨(2008년)의 토니 스타크가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탈출해 처음 주문한 것도 바로 치즈 버거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딱 두 개야. 첫번째는 어메리칸 치즈 버거. 그리고 기자회견을 준비해줘. 일단 치즈 버거.”

피투성이가 된 토니 스타크는 배달된 치즈버거(맥도날드가 아니라 버거킹이었다)를 먹으며 기자 회견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기자 회견장에서 두 번째 햄버거를 마저 먹고 나서야 입을 연다. 2016년 지금이었다면 아마 토니 스타크는 버거킹이 아닌 다른 햄버거를 먹었을 것이다.

| 미국 동부를 주름잡고 있는 셰이크쉑(Shake Shack)

지금 미국 햄버거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의 레스토랑 계의 대부 대니 마이어가 2001년 뉴욕 메디슨 파크에서 처음 시작한 셰이크쉑(Shake Shack)은 햄버거의 신약 성경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것은 동부의 사정. 메이저 리그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로 나눠지듯 햄버거의 신약 성경도 미국 서부에서는 셰이크쉑이 아닌 인앤아웃(IN-N-OUT)버거다.

| 동부에 셰이크쉑이 있다면, 서부에는 인앤애웃(IN-N-OUT)

이 두 버거의 인기 비결은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만드는 것.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라는 말 처럼 들리는 이 비결 뒤 본질을 보면 이 또한 햄버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빵 사이에 소고기 패티와 양파, 양상추, 피클, 그리고 치즈를 넣은 치즈 버거다.

 

햄버거, 결코 단순한 정크푸드가 아니다!

치즈 버거의 구성은 음식 공학적으로 볼 때 거의 완벽하다. 햄버거 빵은 폭신하고 살짝 구운 빵 안 쪽은 바삭하다. 양파와 양상추는 바삭한 식감과 신선한 감각을 선사한다. 피클은 산미로 식욕을 돋우고 구운 패티에서는 인류가 거부할 수 없는 구운 맛이 난다. 열량 가득한 지방인 치즈는 이성을 마비시키며 햄버거 속 재료를 하나로 묶는다.

 

단순하기 보다 복합적인 감각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능(그리고 요리사들)은 이렇게 무력해진다. 영양학적으로도 그렇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이뤄진 3대 영양소가 딱 보기에도 적절히 안배된 구성이다.

여기서 잠깐. 이 치즈버거는 음식으로만 분석하기엔 그 함의(含意)가 재미나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요소 요소로 분해되고 다시 조립된 치즈 버거는 서양 환원주의(Reductionism) 철학이 음식으로 현현(顯現)한 가장 똑부러지는 예이기도 하다. 어떤 상태나 물질을 최소 단위를 향해 나눠가다보면 그 요소 뿐만 아니라 전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으리란 사고가 바탕이 된 환원주의. 그 환원주의처럼 치즈 버거는 고기, 채소, 빵, 치즈라는 구성 요소 그 자체를 겹쳐 만든 공학적 음식이다. 그리고 이 치즈 버거를 빨리 달라고 외치는 아이언맨은 미국 액션 히어로 물의 전형이라는 면에서 또 다른 환원주의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세계 각지의 민속 신화를 수집 분석 했던 신화학자 조지프 캠밸(Joseph Campbell)은 그의 저서 ‘천 가지 얼굴을 한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1949)’에서 모든 신화는 한 가지 유형을 띈다고 했다. 모든 이야기는 영웅이 미지의 땅으로 뛰어들고 (출발, Departure) 그곳에서 악의 무리와 만나 결국 승리 한 뒤 (시련, Initiation)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선물을 가지고 온다는(귀환, Return) 것이다. 이것은 아이언맨의 스토리 라인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아이언맨 속 치즈버거는 무슨 뜻일까? 빵(도입)을 거쳐 양파와 양상추(전개)가 이에 닿으면 그 후는 피클의 신맛(위기), 구운 패티와 치즈로 클라이막스(절정)에 이르고 다시 결말(빵)으로 향하는 구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아이언맨 속 치즈버거는 부분이 전체를 반영하고 복제하는 프렉탈(fractal) 구조를 닮아 있다. 그리고 관객은 치즈 버거를 먹으며(또!) 아이언맨을 보고, 아이언맨 속 풍경과 비슷한 세상에서 같은 삶을 반복한다.

아이언맨에서 ‘조력자’에 해당하는 깡마른 안경잡이 기술자 ‘잉센’은(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부상 입은 토니 스타크를 고쳐준다) 가족이 없다는 스타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중요한 게 없군요.”

나는 늦은 밤 치즈 버거를 먹으며 배가 부르고 혀가 즐거웠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허로움에 맥주를 마시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었다. 그 나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요리를 하겠다고 하루종일 주방에 서 있는 나의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삶과, 그 치즈 버거의 완벽한 효율성의 괴리. 그리고 측정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은유와 충동이 그 치즈 버거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날 밤 포니테일의 예쁘장한 제인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들여 먹는 비효율적인 식사를 떠올리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얕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