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감자탕 대(大)자 하나요!

2016/11/28

출근을 하자 마자 퇴근을 하고 싶었다. 매일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언제나 성실한 21세기의 일꾼인 나로서는 드문 날이었다. 그나마 내가 가진 장기 중 가장 예민한 코가 아침부터 벌렁거렸다. 가죽, 자동차, 기계 상가가 들어찬 하드보일드한 성수동 공기 중으로 기름지고 고소하며 얼큰한 냄새가 부유하는 듯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오늘 점심은 감자탕이다.”

나의 한마디에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감자탕’이라는 고유 명사로 족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성수동의 ‘소문난 성수 감자탕’이었다.

감자탕이라는 음식은 그 족보가 곰탕이나 설렁탕처럼 멀리 올라가지 않는다. 감자를 넣어서 끓이던 탕에 해방 이후 돼지 공급이 늘어나면서 뼈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는 설, 돼지뼈를 감자라고 불렀다는 설 등이 혼재 한다. 하지만 어원으로 음식의 계보를 따지는 것은 그 실체가 모호하고 사회경제적인 흐름 속에 음식의 탄생과 소멸은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믿을 만 하다. 그리하여 시중 감자탕집의 역사는 대부분 그리 길지 않다. 동네 마다 군소 감자탕집이 있고 몇몇 프랜차이즈가 그 나머지 자리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몇 집을 꼽자면 분당의 ‘서울24시 감자탕’, 을지로의 ‘동원집’, 그리고 우리가 찾은 ‘소문난 성수동 감자탕’집이 있다. 분당 ‘서울24시 감자탕’은 주방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손님에 주방 상황을 실시간을 보여준다. 청결에 신경을 쓰는 이른바 신도시형 맛집이다. 묵은지가 들어가는 맛은 그 외관에 걸맞게 깔끔하고 양은 푸짐하다. 그 반대편에 있는 곳은 을지로의 ‘동원집’이다. 이제는 일본 중국 관광객까지 찾아드는 ‘동원집’은 감자탕 집 중 가히 노포라 부를 만 하다. 좁은 실내와 계단 사이로 어깨를 비비며 자리를 잡으면 을지로 뒷골목의 풍경을 옮겨놓은 듯한 감자탕이 앞에 놓인다. 국물은 붉고 살은 두터운데 맛을 보면 일면 담백하게 밀려오는 질감에 살짝 놀란다. 순대와 수육을 반반 시켜서 곁들이면 소주 안주로 그 이상이 없다. ‘소문난 성수 감자탕’으로 할 것 같으면 동네 맛집이 방송을 타고 전국구 대열의 반열에 든 경우다. 방송 이후에도 꾸준히 줄을 서니 이 집의 실력은 밝혀지지 않았던 것일 뿐 절대 유명세를 얻어 탄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이 집은 여느 감자탕 집과 마찬가지로 뚝배기에 파는 것과 냄비째 끓이는 것 두 종류가 메뉴에 올라와 있다. 바쁘고 혼자라면 뚝배기를 시켜야겠지만 머릿수가 둘을 넘어가면 냄비째 시키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네 명인데 중(中)자를 시켜야겠죠?”

“무슨 말씀이세요. 대(大)자는 시켜야죠.”

감자탕이라는 말에 비선 조직처럼 은밀히 감자탕 집 구석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메뉴 선정에 작은 혼선을 빚었다. 그것은 둘은 소, 셋은 중, 넷은 대자라는 간단한 공식을 암기하지 못한 자의 불찰일 뿐이었다. 11시 40분을 넘어 남의 돈을 받아 먹고 사는 인간의 무리들이 하나 둘씩 감자탕 집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미 피로에 찌든 종업원은 보기에도 큼지막한 냄비를 브루스타 위에 올려 놓고 갈 길을 갔다.

“다 익혀서 나온 거니까 끓으면 바로 드세요.”

그녀가 남긴 한마디에 나는 가스 불을 점화했다. 혹자는 테이블 위에 브루스타가 올라간 풍경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식당의 노동력을 절감하고자 하는 한반도 국가 현실의 방증이라고도 한다. 점심 나절부터 브루스타를 끓이는 것이 남 보기 부끄럽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만약 미식의 길을 간다면 그 번잡스러움은 마땅히 치뤄야할 대가이다. 그 대가는 시간과 노력이라는 X와 Y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아무리 종업원이 끓기만 하면 바로 먹으라 했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아무리 육수에 넣고 끓인 고기라 할지라도 바로 먹게 되면 맛이 덜하다. 더군다나 시래기와 대파를 올렸기에 국물이 우려나는데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프렌치 요리에서 기본이 되는 채소 스톡을 우릴 때도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물이 한번 끓으면 불을 끄고 그대로 우려내기도 하고 시간이 얼마 없을 때는 간단히 한번 끓이는 것으로 갈음 하기도 한다. 그 최소 시간이 바로 10분이다. 오히려 스톡을 오래 우리게 되면 오히려 쓴맛이 빠져나와 맛을 버리게 된다.

우리는 식전 반주라는 전통을 수호하고자 약간의 알콜을 섭취하며 잠깐 찾아온 기다림의 순간을 만끽했다. 채소를 국물에 넣고 위로 뜬 부유물을 제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시간+ 노력 = 맛 이라는 공식은 그렇게 완성된다. 드디어 대파의 심이 죽어 향긋한 아로마와 달큰한 부케가 공기와 국물 속으로 뻗어나가고 나서야 우리는 국자를 떠서 큰 뼈다귀를 나눠 앞 접시에 담았다. 우리는 태초, 원시에 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뼈 틈을 파해치고 손으로 들어 입으로 뜯었다. 건조 과정 속에 감칠맛이 증폭된 시래기를 살에 싸서 먹고 시큼한 깍두기의 산미를 지렛대 삼아 식욕을 폭발 시켰다.

“뼈 추가요!”

기본으로 나온 뼈는 이미 4인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된장 푼 육수에 담긴 뼈를 추가하고 나서야 4인의 배가 채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뼈로 끝날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한국인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코스가 남아 있었다.

“라면 사리 두 개 주세요.”

꼬불꼬불한 면 가닥이 들어갈 자리는 있는 것이 한민족이다. 두 봉지는 너무 많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지만 물 속에 담긴 나선형 모양을 보자 그 이견은 찬성으로 바뀌었다. 건조면을 반으로 쪼개어 국물 속에 넣었다. 면의 심이 조금 남은 ‘알덴테’ 스타일로 해달라는 의견도 접수했다. 먼저 불을 세게 올렸다. 면이 불지 않고 탱탱하게 유지하려는 의도였다. 라면을 굳이 같이 끓이는 이유는 허기를 달래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의도가 있다. 면의 전분기가 빠지면서 국물의 농도가 진해진다. 마치 중식에서 수프를 끓일 때 물전분을 넣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 국물의 농도와 점성이 높아질수록 혀에 닿는 밀도감도 달라진다. 흔히 ‘맛에 깊이가 있다’고 할때의 깊이는 추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화학과 물리학적 반응에 의한 것이다.

포만감이 더해지고 취기가 오를수록 국물의 양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방치가 아니라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프렌치의 소스의 기본 중 하나가 바로 ‘주(Jus)’다. 영어로는 주스와 같은 어원을 가진 이 소스는 단순히 말하자면 스톡을 젤라틴이 응고되는 수준으로 졸이고 졸인 것을 말한다. 대략 처음 스톡의 1/10 수준이 되면 그 모든 것이 응축된 맛이 난다. 밀도는 높아지고 질감은 더욱 부드러워진다. 비록 감자탕 집이었지만 우리의 냄비 속 액체도 프렌치 음식의 그 무엇과 비슷한 모양새를 내고 있었다. 이렇게 까지 육수를 졸인 것은 마지막 코스를 끝마치기 위해서였다.

“볶음밥 두 개요!”

이제 고함을 질러야만 종업원을 부를 수 있었다. 김치 등등을 썰어넣은 밥을 들고 종업원이 왔을 때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육수의 수위에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분을 살짝 날려 바삭하게 굽듯이 볶은 밥을 먹으니 1시간이 끝났다. 밖으로 나오니 어둡고 불길했던 하늘은 개었고 공기는 커다란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처럼 산뜻하게 양 볼을 스쳤다. 배가 부르니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것 같았다. 그 생의 기쁨에 우리 중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아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