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이런 완벽한 밥은 어떻게 짓는거죠?

2019/04/24

배가 불러 더 이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뒷 주방을 바라보며 디저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찌에 앉아 스시를 먹은 지 1시간 남짓 흐른 때였다. 광어로 시작해 도미, 전복, 성게알, 제철을 맞은 방어까지, 갖가지 생선을 올린 스시에 쉴 틈이 없었다. 느긋한 포만감이 찾아왔다. 그 후에는 자리를 뜨고 싶은 성급한 마음이 들었다. 간만의 부산이었다. 해운대 인근에 있는 스시집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는 아까웠다.

“서비스 괜찮으십니까?”

실장이란 배지를 단 요리사가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나는 얼떨결에 “네”라고 답했다. 안경을 쓰고 팔뚝이 굵었던 그는 주방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아마 50대 중 후반쯤 되었을까?

“솥밥이 조금 남아서요.”

부산 사투리로 혼잣말을 하듯 웅얼거리던 그는 솥을 앞에 두고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스시를 쥐기 전 요리사들이 으레 하는 몸동작이었다. 그다음 그는 얼음물에 두꺼운 두 손을 담그더니 바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 속에 손을 넣었다. 갓 지은 밥을 쥐기 위해 얼음물로 손을 차갑게 식힌 것이었다. 그리고 흔히 보는 삼각형으로 밥 모양을 잡고 김으로 밑을 받쳐 나에게 건넸다.

“소금물로 지은 오니기리(주먹밥)입니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밥과 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주먹밥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주먹밥에 비해 크기도 꽤 컸다. 나는 그 주먹밥을 잠시 바라봤다. 밥알 깨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밥과 밥 사이를 잇는 전분기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하얀 쌀눈도 보였다.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습기에 김이 눅눅해질 것 같았다. 그대로 밥을 입에 넣었다. 한 입을 베어먹고 나는 다시 그 밥을 바라봤다. 놀라운 식감이었다. 소금물로 밥을 지어서일까? 살짝 단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밥알에 탄력이 있었다. ±1의 오차도 없이 간은 완벽했다. 뭉쳐진 밥은 입속에서 밥알 하나하나로 자연히 흩어졌다. 솥에서 익힌 밥이 버금은 구수한 향이 코로 빨려 들어갔다. 식감과 향, 간이 모여 하나의 감각으로 변했다. 쾌감이었다. 나는 놀라서 요리사를 바라봤다. 그는 다른 손님과 이야기 하며 웃고 있었다.

“이 밥을 어떻게 지은 거죠?”

나는 굳이 그 요리사를 불러 물었다. 그는 여전히 웃으며 답했다.

“쌀 종류는 고시히카리입니다. 쌀도 중요하지만 프로세스도 중요합니다. 씻기, 불리기, 물기 제거, 밥물 잡기, 불 세기, 뜸 들이기, 이 모든 게 딱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는 우문에 현답을 하듯 답했다. 맞는 말이었다. 세세한 노하우가 모여야 사람의 감각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나는 더 설명을 청하지 않았다. 대신 그 주먹밥을 묵묵히 씹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생각했다. 밥이란 무엇일까? 한국 식당과 일본 식당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밥맛이라고 한다. 일본 식당에 가면 밥맛 없는 곳이 드물다. 우리가 식사하는 것을 ‘밥’ 먹는다라고 말하듯이 한국인의 식단에서 여전히 밥은 제일 중요하다. 영양소 측면에서는 주된 탄수화물 공급처이며, 맛의 구성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이 된다. 그림으로 치자면 하얀 캔버스와 같다. 특별한 맛이 없는 듯 보이지만, 밥맛이 없으면 전체 그림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밥이 제일 중요하다. 그럼 어떤 쌀을 골라야 할까? 그것을 알기 위해선 쌀의 가공 방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쌀 겉면은 하얗다. 이유는 도정을 하면서 겉을 깎아내서 그렇다. 쌀 외피는 쌀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그 외피를 깎아내는 순간부터 순수한 탄수화물에 가까운 ‘쌀’은 쉽게 산화된다. 오래된 쌀로 밥을 하면 맛이 산뜻하지 않고 쉰 맛이 나는 게 바로 그것 때문이다. 좋은 쌀을 고르기 위해서는 첫째, 도정일이 가까워야 하고, 둘째 부서진 쌀이 없는 완전미의 비율이 높아야 한다. 쌀이 부서져 있으면 속의 전분이 쉽게 빠져나와 밥을 지으면 입에서 풀어지지 않고 떡져서 식감이 떨어진다. 쌀의 품종도 중요하다. 사실 어떤 품종을 고르는가는 기호의 문제다. 그보다 ‘혼합미’라고 적힌 쌀을 고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품종의 구분 없이 종합미곡처리장에서 쌀을 섞어 가공했다는 뜻이다. 애초에 품종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과정을 거친 쌀이 좋기는 쉽지 않다. 이제 정말 밥을 지어보자.

요즘 나오는 전기밥솥은 첨단 과학의 산물이다. 굳이 가마솥 타령을 하지 않아도 가정에서는 차고 넘친다. 그보다는 밥을 짓는 과정이 중요하다. 쌀은 차가운 물에 세 번 정도 씻는다. 이때 너무 박박 씻으면 겉면에 상처가 나서 좋지 않다. 예전처럼 불순물이 섞이는 경우도 적어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 쌀은 한 시간 정도 불려서 쓰는 게 가장 좋다. 그보다 오래 불리는 것도 좋지 않다. 목욕을 오래 하면 피부가 불듯이, 쌀도 마찬가지다. 오래 놔두면 잘 익기야 하겠지만, 표면이 뭉개져서 밥의 식감이 좋지 않다. 드디어 밥물을 맞출 차례다. 밥물 맞추는 게 가장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불리지 않은 쌀은 1:1.2, 불린 쌀은 1:1로 밥물을 맞추면 실패하는 법이 없다. 이것은 손맛이 아니라 화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화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레시피를 보면 밥을 지을 때 소금을 넣거나 물 대신 육수를 쓰기도 한다. 분명히 소금을 넣거나 다시 국물을 쓰면 맛이 달라진다. 특히 소금을 넣게 되면 쓴맛이 덜해지고 잡맛을 제거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도 쌀의 경우에는 소금을 넣는 레시피가 많다. 그 이유는 한국 쌀보다 기름기가 훨씬 적기 때문에 밥이 심심하게 느껴지기 쉽기 때문이다. 뜸을 들일 때 코코넛 밀크를 섞는 레시피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중에서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 하나만을 말하라고 한다면 답이 있다. 바로 그때그때 밥을 짓는 것이다. 식당 밥이 맛없는 이유는 쌀이 너무 익어서 그런 것이다. 식은 밥을 낼 순 없으니 밥을 보온기에 넣어두는데 그 열에 밥은 계속 익는다. 그 시간 동안 신선함과 윤기, 수분은 사라지고 찰기만 남아서 마치 군내 나는 떡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갓 지은 밥의 향기가 사라진다. 쌀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그때 그때 밥을 짓는다면 최소한 몇 시간 지은 밥보다는 맛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뜸을 들이고 밥이 완성되면 바로 밥을 잘 섞어주자. 밥 속에 갇혀 있던 여분의 수증기가 밖으로 나와 밥이 뭉치는 것을 막는다. 이것으로 밥 짓기는 끝이 난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우리가 전기밥솥 스위치 한번 누르고 마는 그 행위 속에 무수한 디테일이 숨어 있다. 일본에서는 밥을 제대로 지을 때 쌀을 100번 씻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쌀에 붙은 전분기를 확실히 제거한다. 그래야 쌀알과 쌀알이 붙지 않고 낱알이 살아 있다. 솥 위에 엄청난 무게를 더해 압력을 높이기도 한다. 그러려면 깨진 쌀알이 없는 완전미여야 한다. 그러지 않을 때 오히려 전분이 쉽게 새어 나와 밥 전체를 망치게 된다. 계절에 따른 쌀알의 건조 정도도 밥물 잡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조건, 레시피와 조리 예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디테일이 합쳐졌을 때, 우리는 밥 한 숟가락에 눈을 뜨고 기뻐하게 된다. 깊이 알면 알수록, 몰입할수록,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하얀 쌀밥, 우리가 삼시 세끼 먹는 그 밥에도 깊고 넓은 신비가 담겨 있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입이 무거워진다. 알면 알수록 고개가 숙어진다. 알면 알수록 부끄러움이 많아진다. 이는 밥뿐만이 아닐 것이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