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그리스 산토리니 편

2017/05/02

에게 해의 보석 같은, 동화 같은 하얀 섬

산토리니
Santorini

우리네 대부분은 답답한 현실 안에 갇혀 살고 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널려진 수많은 여행 블로그, 주말판 신문의 한편이나 여행사의 안내 책자에는 아름다운 여행지의 사진들이 장식된다. 하지만 내 평생 언제 한 번 갈 수 있을까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낙심과 기대가 섞인 채로… 필자도 녹록지 않은 직장생활 만 20년이 지난 뒤 보름이라는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어디를 갈까? 주저하지 않고, 마음속의 그림 같은 곳을 택하기로 했다. 바로 산토리니 섬.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산토리니(Santorini)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회자되고, 세계에서 한 해 수십만 명이 몰려드는 섬! 그리스식 이름은 티라(Thira)다. 13세기 베네치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성(聖) 이레나(Saint Irene)를 기리는 예배당을 지었는데, 그 성인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섬의 사람들 모두 모아도 13,000명의 작은 섬.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에게 해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가게 하는 것은 없으리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사실 이곳까지 오게 한 책이다. 작가의 고향이자 주된 배경인 크레타 섬은 바로 산토리니와 가까이 붙어있다. 복잡한 머릿속과 여기저기 구겨진 마음이 이곳에 가면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을 닮아갈 것 같은 꿈을 가지고…

 

산토리니, 용암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하얀 집들, 파란색 교회당 위 지붕이 동화 속 같은 섬.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꼽힐 만한 매력이 분명 이곳에 있다.

아테네와 다른 고대도시들이 철학과 신화, 과거의 도시라면 이 섬은 동화 같은 낭만과 환상이 가득한 섬이다. 크레타와 산토리니 등 에게 해 섬사람들은 오랜 기간 강대국의 침략과 자연재해 속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지켜왔다.

 

아테네(Athens)에서 산토리니(Santorini)로

아테네에서 산토리니로 가는 길은 비행기와 배편 두 가지! 여유가 있다면, 배를 타고 이 섬 저 섬 둘러보며 바닷길을 떠다니는 묘미도 있다. 자유인 조르바처럼! 이토록 아름다운 산토리니가 기원전 1,500년경 화산 폭발이라는 대재앙의 결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건 아이러니다.

신항구에서 버스로 20분 가량 가면 피라(Fira) 마을을 만난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파른 절벽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마을의 번화가로 가기 위해서는 588개의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편하게 오를 수 있도록 나귀와 케이블카가 있지만, 그만큼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절벽에 집을 지은 이유는 중세시대 에게 해 일대의 해적들이 섬사람을 잡아가고 곡물을 빼앗아갔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바다가 보이면서 침입하기 어려운 이곳을 피난처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땅속으로 들어간 곳에 참호처럼 집을 지어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이 되었다. 재료는 화산 폭발에서 나온 붉은 돌과 화산회 등을 이용했다.

섬은 초승달 모양이다. 섬 중심 마을인 피라(Fira)와 그 위 세계 최고의 저녁노을 뷰포인트가 있는 이아(Oia) 마을이 있다. 항구가 있는 올드 포트에서 피라까지 가는 방법은 세 가지. 걷는 것, 나귀 타는 것, 그리고 케이블카.

 

산토리니(Santorini) 중심 마을, 피라(Fira)

걸어서 가려면 58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걷는 쪽을 택했다. 따가운 햇살에 비지땀이 흘러도, 지그재그 수백 계단에 다리 근육이 조여 들어와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좁은 계단길 중간중간 나귀를 만날 때마다 기쁘게 길을 피해준다. 여기선 동물이 우선이다. 나귀에게 길을 양보할 때는 반드시 낭떠러지 쪽이 아니고, 건물 쪽으로 피해야 안전하다. 그때마다 관광객들은 나귀를 보며 신기한 미소를 던지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돌계단을 오르는 나귀의 모습은 제법 힘들어 보인다.

동화 속 같은 풍경이다. 하양과 파랑의 강렬한 색대비는 누구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훌륭한 관광엽서 사진으로 나타난다. 그렇다. 이곳에선 누구나 사진작가가 된다.

아기자기한 상점들 하나하나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피라(Fira)를 지나 이아(Oia)로

피라 마을에서 20여 분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다시 가파른 용암 절벽에 수백 채의 파란 지붕의 하얀 집들이 옹기종기 매달린 것 같은 이아(Oia)가 나타난다. 피라가 북적북적하다면 이곳은 아담하고 조용하다. 디자인이 뛰어난 수공예품 가게, 성물 가게, 명품숍들이 여기저기 어우러져 있다.

산토리니 섬을 유명하게 만든 아틀란티스 서점. 이곳엔 <어린 왕자>, <그리스인 조르바>, <호밀밭의 파수꾼들> 등 알려진 책들의 초판본이 많다는 것. 물론 가격도 수백만 원 내외로 비싸다.

이 섬을 찾은 영국인 부부가 풍광에 매료돼 친구들과 만든 서점. 이아 마을에서 꼭 들러야 할 관광코스다.

섬 전체가 예술품과 디자인 그 자체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붉은빛 절벽 아래엔 요트와 모터보트들이 즐비하다. 마을 광장에서 공연하는 무명가수. 이런 마을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평생 부르며 사는 그녀는 행복하다.

화산토가 천지인 이곳에도 포도밭이 있다. 진흙이 없어서 포도나무에 병충해가 드물어 없어 예로부터 품질 좋기로 이름난 와이너리가 많다.

동네 어귀의 공동묘지. 아름다운 이 마을을 가꾸고 일군 주인공들의 안식처.

 

사람은 나이가 든다 해서 반드시 더 나아지지만은 않는다. 매사에 동요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건넬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지혜로워진다고도 똑똑해진다고도 할 수 없다. 너그러워 보일 때도 있지만, 그건 어떤 사실을 인정해서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즉 무관심해서다”
-가쿠다 미쓰요, <무심하게 산다>중에서-

 

산토리니(Santorini) 최고의 뷰포인트,
굴라스 성채(Goulas Castle)

이아 마을을 돌다 보니, 사람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몰려간다. 굴라스 성채. 에게 해 최고의 노을을 볼 수 있는 최고의 뷰포인트다. 일찍부터 자리 잡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카페와 리조트에 숨어있던 손님들이 삼삼오오 나오더니 난간과 테라스를 가득 메운다. 옛 로마의 전망대였던 성채(사실 다른 진짜 이름이 있다)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곳으로 변했다. 한낮 바다를 뜨겁게 달군 태양은 서쪽 수평선 너머로 숨어들 기세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만약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냐고! 많은 이들은 단연 이곳 ‘산토리니 섬’을 꼽는다. 이곳에서는 세상 고민, 시름도 꿈도 기쁨도 마비된다.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시간을 정지시키는 ‘마력’이 있다.

북쪽 절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흰 집과 리조트들은 태양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분홍에서 붉음으로, 다시 검붉음으로 변한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집들 사이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또 다른 밤 풍경을 선물 받는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형언키 어려운 뿌듯함과 우울함이 뒤섞여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굿나잇! 산토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