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경매를 통해 돌아온 소중한 우리 문화재

2018/06/22

2016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군 화제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기억하시나요? 다른 건 몰라도 박보검이란 배우만큼은 강렬하게 기억에 남지요. 이 드라마에서 박보검이 맡은 역할은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였습니다. 스물둘이란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뜬 바로 그 비운의 왕위계승자 말입니다. 효명세자의 아버지는 순조입니다. 순조는 조선 최고의 문예군주로 불리는 정조의 아들이지요. 그러니까 효명세자는 정조의 손자인 겁니다.

2016년 KBS 2TV에서 방영돼 큰 화제를 모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순조와 순원왕후는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습니다. 효명세자가 장남이었고, 둘째 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지요. 그리고 세 딸 명온, 복온, 덕온공주가 있습니다. 드라마에는 세 공주 가운데 명온공주만 등장하더군요. 아쉽게도 드라마에선 만나볼 수 없었지만, 이 자리에서 소개할 우리의 주인공은 다섯 남매의 막내딸이자 효명세자의 막내 여동생인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입니다.

덕온공주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입니다. 덕혜옹주가 있는데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공주와 옹주는 엄밀히 말해서 출생 신분이 다릅니다. 정실 왕후가 낳은 딸이 ‘공주’, 그 외에 다른 부인이 낳은 딸을 ‘옹주’라 했습니다. 그래서 고종의 딸인 덕혜는 ‘조선의 마지막 옹주’로 불리는 겁니다. 덕온공주는 일반인에게 시집을 가 궁궐 밖에 나가 살다가 효명세자와 마찬가지로 스물셋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뱃속에 있던 둘째 아이와 함께 말이에요.

<덕온공주 당의>, 1837년,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중요민속문화재 제1호

요행히도 덕온공주가 입었던 옷 가운데 원삼, 당의, 장옷, 삼회장저고리, 누비저고리 등 6점이 지금까지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유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일괄 지정됐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덕온공주의 당의(唐衣)는 우리나라 중요민속문화재 제1호입니다. 그나마 이만큼 어엿하게 유물들이 남았으니 고인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더듬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 마지막 공주의 인장, 뉴욕 경매에 등장하다

<덕온공주 인장>

그런데 최근 바다 건너 미국 뉴욕에서 범상치 않은 도장 하나가 경매에 나옵니다. 해태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것만 봐도 상당히 지체 높은 이의 물건임을 단박에 알 수 있지요. 영어 해설을 자세히 읽어보니 놀랍게도 덕온공주(Princess Deokon)의 인장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닥에 ‘덕온공주지인’ 여섯 자가 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경매사인 크리스티 측에 물어보니 미국의 한 소장자가 갖고 있다가 내놓은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만일 진품이라면 그것 자체로 ‘사건’이었습니다.

덕온공주의 도장은 어보(御寶), 즉 왕실 도장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격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11년 6월, 조선 왕실 도장인 어보(御寶)가 국내에서 경매에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1496년에 만들어진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비(妃) 공혜왕후의 도장이었는데요. 실제로 사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의례용으로 만든 어보는 왕실을 상징하는 유물이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급입니다. 당연히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거고요.

2011년 국내 경매를 통해 존재가 확인된 <공혜왕후 어보>

이런 유물이 경매에 나왔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요. 그럼 도대체 어떤 경로로 이 귀중한 왕실 유물이 경매에 나오게 됐을까요. 추적을 해보니까 6•25 때 미군이 불법으로 몰래 반출을 했고, 그 뒤로 어디를 어떻게 떠돌았는지 무려 60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춘 채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러다 1987년에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우리나라 수집가가 낙찰받아 보관해 오다가 2011년에 국내 경매에 내놓은 겁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경매를 통해 국내로 가져온 건 정말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경매라는 것이 가진 자들의 한가한 돈 놀음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만, 어디에 있는지 행방조차 알 수 없었던 귀중한 문화재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한 순기능이 있습니다. 만약 소장자가 이 유물을 다시 경매에 내놓지 않았다면 국내에 이런 귀중한 왕실 유물이 있는지조차 몰랐겠지요.

다행히 경매에서 어보를 낙찰받은 건 ‘문화유산국민신탁’이었습니다.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소중한 공동체의 문화유산을 국민의 힘으로 지켜내고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공적 성격의 기구입니다. 4억 6천만 원에 낙찰된 조선왕실 어보는 국가에 무상으로 양도됐고, 이제 어엿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됐습니다.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호조태환권’이 장물이 되다

2010년 5월 미국에서 경매에 나와 논란이 된 <호조태환권 원판>

왕실 유물이 경매에 나온 또 하나의 기억할 만한 사례를 소개할까요? 2010년 5월, 미국 미시건 주의 한 작은 도시에서 소리소문없이 경매에 나온 유물 하나가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1893년 대한제국이 ‘호조태환권’이란 지폐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인쇄용 원판입니다. 결과적으로 지폐를 실제로 발행해서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화폐 개혁을 향한 대한제국 황실의 굳은 의지가 담긴 소중한 유물입니다. 그런데 이 유물이 미국의 자그마한 지방 소도시 경매에 나온 겁니다.

왕실 어보와 마찬가지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라이오넬 헤이즈라는 미군이 1951년 덕수궁에서 반출한 겁니다. 당시 미군이 전리품 삼아 챙겨간 왕실 유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전쟁이란 비극이 초래한 또 다른 비극입니다. 호조태환권 원판은 당시에 액수에 따라 모두 네 종류가 만들어졌는데, 국내에는 50냥짜리와 10냥짜리 뒷면만 남아 한국은행의 화폐박물관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불법으로 반출된 유물은 ‘장물’, 즉 ‘훔친 물건’입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 미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경매사와 낙찰자를 장물 거래 혐의로 처벌했고, 마침내 호조태환권 원판은 고향 땅을 떠난 지 6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유물 역시 경매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 존재조차 몰랐을 테고, 돌려받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왕실 유물은 일반에 유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있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장물입니다. 그래서 왕실 유물은 소재만 확인되면 언제든 되찾아올 기회가 있는 거죠.

하지만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는 반출 과정을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훔친 건지, 아니면 선물로 준 건지, 돈을 주고 사 간 건지, 어떤 경로를 거쳐 해외로 빠져나갔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왕실문화재가 아닌 다음에야 불법으로 반출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나서서 입증해내지 못하면 돌려받을 수가 없다는 거죠. 그걸 가진 사람이 어서 가져가시오, 하고 알아서 선뜻 내놓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다시, 덕온공주의 인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누군가 조선 왕가의 인장을 경매에 내놓고 있다?

인장 경매결과

4월 1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의 <일본과 한국 미술> 경매에 143번째로 나온 <덕온공주 인장>은 23만 7,500달러, 우리 돈으로 3억 원에 낙찰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확인된 낙찰자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조사와 환수를 맡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었습니다. 이렇게 또 귀중한 유물 한 점이 경매라는 절차를 통해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겁니다. 국내에 남아 있는 공주와 옹주의 인장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더구나 조선의 마지막 공주의 유품이라는 상징성 때문에라도 <덕온공주 인장>의 가치는 오롯합니다.

2017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숙선옹주 인장>

비슷한 다른 사례가 없을까 하고 과거 크리스티 경매 기록을 찾아보니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더 나오더군요. 꼭 1년 전인 2017년 5월에 해태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또 다른 인장이 경매에 출품됐던 겁니다. 이 인장은 정조가 후궁 수빈 박 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가 쓰던 겁니다. 정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순조의 여동생이지요. 덕온공주에게는 고모가 되는 셈입니다.

숙선옹주 인장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한국 고미술품 53점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인 34만 3,500달러에 낙찰됩니다. 당시 환율로 계산해보면 우리 돈으로 3억 8,500만 원 정도 됩니다. 덕온공주 인장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린 거죠. 그런데도 이 소식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언론 보도도 거의 없었고요. 숙선옹주 인장은 대체 어디에 가 있는 걸까요. 이후 인장의 종적을 알려주는 정보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1년 간격으로 숙선옹주와 덕온공주의 인장이 똑같은 경매에 나왔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누군가 조선의 인장을 여럿 소장한 사람이 일정한 시간을 두고 하나씩 조심스럽게 물건을 경매에 내놓는 건 아닐까요? 공주와 옹주의 도장은 왕가의 유물이긴 해도 왕실 문화재는 아니기 때문에 증거가 명백한 도난품이 아닌 한 돌려달라고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매에도 나올 수 있는 거고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우리 문화재 당국은 과연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걸까요.

 

다시 고국의 품에 안긴 조선백자의 꽃, 달 항아리

(좌) 2015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국내로 환수된 백자 달항아리
(우)2018년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백자 달항아리

2015년 11월,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 한 점이 경매에 나옵니다. 일본인 소장자가 50년도 넘게 애지중지 아껴온 귀한 물건이라 처음엔 경매에 내놓지 않으려 했다는군요. 경매 주관사인 서울옥션이 무려 3년 넘게 공을 들여 설득했답니다. 조선 백자의 꽃으로 불리는 달항아리는 현재 온전하게 남아 전하는 것이 10여 점에 불과할 정도로 귀하디귀한 유물이지요. 이 달항아리는 어느 한국인이 21억여 원에 최종 낙찰을 받아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문화재 환수의 사례였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보다 예술성이 더 뛰어난 백자 달항아리가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 나왔습니다. 역시 일본 도쿄의 한 소장자에게서 나온 물건이라 했습니다. 이 경매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그림이 85억 3,000만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워낙 화제가 된 터라 달항아리는 사실 뒷전이었습니다. 경매가 끝난 뒤에 확인해보니 다행히 한국인이 낙찰받아 고향으로 돌아왔답니다. 크기로 보나 형태로 보나 빛깔로 보나 근래 보기 드문 이 명품 달항아리의 최종 낙찰가는 우리 돈 25억여 원,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로는 역대 최고가 기록을 썼습니다.

우리 문화재가 반드시 우리 땅에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모든 문화재를 되찾아 와야 한다는 발상은 쉽게 말하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좁은 생각일 뿐이지요. 우리의 귀중한 유물이 해외 유수의 미술관, 박물관에서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숱한 외세의 침략과 기나긴 식민지 시절 동안 워낙에 많은 문화재를 잃어버리고 빼앗겼기 때문에, 이제라도 정말 귀중한 것들은 우리 손으로 되찾아 와야겠다는 열망이 솟아나는 것 또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문화재를 해외 경매에서 낙찰받아 되찾아오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언론 보도를 통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문화재 반환에 대한 생각과 여건이 성숙했다는 뜻입니다. 그게 합법적으로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모두가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이제 긴 타향살이를 마치고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온 <덕온공주 인장>을 우리 박물관에서 곧 만날 수 있겠지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