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

2018/07/17

자정이었다. 옷에는 주방의 온갖 냄새가 배여 있었다. 이마에는 흐르다 말라버린 땀 줄기가 소금이 되어 떨어졌다. 눈은 따갑고 허리는 아팠다.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허리를 숙이고 땀을 흘렸으며 두어 번 화장실에 갔다. 로켓을 쏘아 올리듯 초 단위로 몸을 움직였고 용광로에서 일하는 광부처럼 불꽃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재료들이 준비되면 큰 접시 위에 화가처럼 소스로 그림을 그렸고 외과 의사처럼 핀셋을 들고 꽃과 허브 등으로 음식을 장식했다. 그 후엔 유럽풍의 거만함을 지닌 웨이터가 접시를 손과 팔뚝으로 받쳐 들고 손님에게 가져갔다. 호주 멜버른의 한 주방, 그곳은 뜨겁고 바빴으며 맛에 있어서는 경건하고 또 무절제했다. 맛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고 누구든 희생해야 했다. 나는 차라리 군대를 주방으로 왔으면 하는 한국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버텼다. 일과를 마치고 나면 주방 밖 홀로 나갈 수 있었다. 그곳에는 늦은 밤 여흥을 즐기고 있는 손님들이 있었다. 내가 만든 30달러짜리 접시를 앞에 둔 남녀는 갈색빛으로 물든 두꺼운 팔뚝과 가는 허리, 길고 날씬한 허벅지를 드러내놓고 서로를 응시했다.

나는 냄새나는 후드티와 밑창이 닳은 운동화를 신고 어두운 거리로 나갔다. 배가 고팠다. 하루종일 비싼 음식을 만드느라 물 외에는 어떤 것도 삼키지 못했다. 이런 밤 내가 향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1달러짜리 조각 피자를 파는 피제리아, 혹은 편의점이었다. 피제리아에서는 나만큼 피곤해 보이는 직원이 말라빠진 피자를 골판지 위에 올려줬다. 나는 플라스틱을 갈아 만든 것 같이 이상한 밀가루 냄새가 나는 피자를 악어처럼 씹어먹었다. 피자가 질리면 편의점 차례였다. 반값으로 할인 판매를 하는 일본식 참치김밥과 더블초코 아이스크림을 한꺼번에 사곤 했다. 그 둘을 번갈아 가며 먹으면 하루종일 요리를 한답시고 몸을 쥐어 짜낸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 한심함은 김밥과 아이스크림의 조합이 맛있게 느껴질 때 더욱 심해졌다. 나는 그 시절 그 둘을 한 번도 남긴 적이 없다. 말라서 피 냄새가 나는 입속에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넣으면 온몸의 세포가 발광을 하며 아이스크림에 달려드는 것 같았다. 김의 감칠맛과 익숙한 통조림 참치의 짠맛이 혀에 닿으면 이 김밥 한 줄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이었다. 그 둘을 말끔히 해치운 뒤 씻고 홀로 침대에 누우면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맛있다는 건 무엇일까?

강남에 가면 음식이 싱겁다. 강남 사람들이 짠 음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강 이남으로 내려가면 짠맛에 대한 참을성이 왜 현저히 낮아질까? 아예 다른 인종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강을 사이에 두고 기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일까? 아니다. 단지 그들이 더욱 건강에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만 간이 강해도 심한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손님들 컴플레인이 워낙 많아서요.”

청담동에 문을 연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마치 간이 되지 않은 설렁탕처럼 밍밍했다. 요리사가 내놓은 답은 ‘컴플레인’ 때문이었다. 어떤 손님은 독을 맛본 것처럼 크게 화를 내기도 한다. 한국에서 여럿과 식사를 하면 십중팔구 누군가는 간을 가지고 불평을 하며 ‘짜다’ 타령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제가 좀 싱겁게 먹거든요.”

이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에서 어떤 미안함도 쑥스러움도 엿볼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미각이 너무나 섬세하여 짠맛을 견딜 수 없음을 과시하는 거만한 뉘앙스가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 어느새 음식을 싱겁게 먹는 것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표식이 되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싱거운 음식이 건강하다는 고정관념이다. 세계에서 가장 음식을 짜게 먹는 나라는 일본이며 또 최고 장수국도 일본이다. 2001년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인당 일일 12g의 염분을 섭취했다. WTO 권장섭취량은 5g이다. 그리고 일본 남성은 80.98세 여성은 87.14세의 평균 수명을 가진다. 정확히 말하면 염분 섭취량과 고혈압과의 상관관계도 뚜렷하지 않다. 무엇보다 고혈압 자체의 원인이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염분, 즉 나트륨은 수용성이기 때문에 적정량을 초과하면 소변으로 배설된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염분은 악하고 최대한 줄여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짠맛이 강할수록 입맛이 저열하다는 인식이다. 간이 최대한 적게 되어야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본연의 맛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를테면 김치 본연의 맛은 무엇인가? 소금도 고춧가루도 마늘도 최대한 적게 넣어야 배추 본연이 맛인가? 그렇다면 발효는 어느 정도 해야 하는가? 김치 중 왕 중의 왕은 발효를 최소한으로 한 겉절이인가? 물론 재료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요리의 최대 목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한국에서 통용되는 본연의 맛은 재료를 생식에 가깝게 소비해야 한다는 원리주의로 향한다. 음식의 염도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우리와 너희를 가르고 우열을 판단한다. 근래 한국에서 그 우열의 기준이 되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냉면이다.

한국에서 냉면을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체험이다. 냉면에 관한 글과 책은 매해 여름이 되면 선거철 정치인들의 공약처럼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 맥락은 다음과 같다. 냉면은 먹는 방법이 정해져 있고 어떤 이상향이 있는 음식이다. 이 방법을 지키지 못하면 문화인이 아니고 개화되어야 한다. 덕분에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맨스플레인’이란 단어를 변형해 ‘면스플레인’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음식에 대해 논하고 평가한다는 것. 어찌 보면 올바른 현상이다. 사람은 자동차가 아닌데도 연비와 같은 가성비를 논하며 오로지 실질적 가치만을 이야기하던 세태보다는 낫다. 그럼에도 불편한 무언가가 있다. 음식을 즐기는 무엇이 아닌, 혹은 소중한 무엇이 아닌 자신을 뽐내고 과시할 수 있는 대상물로 대한다는 것이다.

음식은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면서도 가장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음식을 대한다는 것,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렵다. 늘 모순을 품는다. 즐겁고 싶지만 늘 즐거울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지락의 쾌락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밧줄이 된다. 아직 한국에서 음식을 먹을 때 암과 건강을 동시에 거론하는 이유는 한국이 아직 선진국이 아님을, 즐기고 누리는 대상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생존재의 역할을 한다는 반증이다. 호주에서 요리사 생활을 할 때, 나에게 음식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 맛없는 삼각김밥과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해치울 정도로 허기진, 가난한 나였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음식이 풍족한 세상에 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가장 부유한 강남에서 산다는 사람도 여전히, 생존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음식은 그리하여 불안의 증거다.

감각이 아니라 생존을 이야기할 때, 취향이 아니라 건강을 이야기할 때, 나는 우리 앞에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 길 위에는 짜고 달고 시고 매운 감각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그 감각들을 논할 때, 감각의 개별성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음식이 무엇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것이다. 달고 짜고 시고 매운 인생의 무엇, 사랑의 무엇으로.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