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음식을 쓰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찌개 맛집을 찾아서

한국에 온 외국인은 뭐가 먹고 싶을까? 질문을 바꿔서 외국인에게 어떤 음식을 소개해야 할까? 이런 고민은 한국인만 하지 않는다. 낯선 곳에 왔을 때 평균적으로 끌리는 음식은 비슷비슷한 얼개를 가졌다. 우선 단맛이 기본적으로 깔린다.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단맛은 거부감을 없애준다. 단맛이란 영양분이 풍부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름에 볶거나 튀긴다. 간단히 말해 설탕과 기름은 어디를 가도 먹힌다. 그러나 신맛이 들어가면 거부감 지수가 확 상승한다. 신맛은 발효가 진행되었을 때 생긴다. 발효란 다른 의미로 ‘썩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쿰쿰한 발효취까지 더해지면 웬만한 외국인은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다. 그리하여 진정한 현지식이란 보통 이 지점에 있다. 발효되어 특유의 향취와 신맛이 강한 음식. 여기에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먹어서 어떤 전문 식당이 있는가에 의문이 들 정도라면 더 정확해진다. 이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는 바로 김치찌개다.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신맛, 발효된 김치의 물컹거리는 식감과 더불어 뜨겁게 끓여 먹는 독특한 식문화까지, 한국적 맛의 총체라고 할 만 하다.

이제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 김치찌개는 어디나 팔지만 실제 먹을만한 김치찌개를 파는 곳은 흔하지 않다. 광화문에 있는 ‘광화문집’은 광화문이라는 소재지와 상호, 기자와 공무원 등 한국 사회의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이 자주 찾던 집이라는 면에서 상징적인 집이다.

사회 명사들도 즐겨찾는 광화문 터줏대감, 광화문집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하는 뒷골목 이층 집에 있는 이 집은 마치 홍콩 현지인들이 찾는 오리국수집 마냥 무척이나 작은 주방과 홀이 있다. 여기에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다락방이 있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이 집에 들어와 허리를 굽혀 다락방에 올라간다. 메뉴는 김치찌개, 제육볶음, 달걀말이 정도가 다다. 점심나절 늦게 이 집에 가면 할머니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한다.

 

“거기 은행 사람들은 다 왔다 갔나?”

“아니래. 오늘 전산 사고가 나서 점심도 못 먹는대.”

그러다 보면 한 무더기의 직장인들이 우당탕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이제 점심 먹는겨?”

“갑자기 사고가 나서요. 김치찌개 주세요.”

그러면 인분 수대로 김치찌개가 버너 위에 올라간다. 얼리지 않는 돼지고기와 김치찌개용으로 젓갈을 넣지 않고 담갔다는 김치가 숨텅숨텅 들어간 찌그러진 냄비에 파란 가스 불이 닿는다. 맑은 육수 안에 김치와 돼지고기가 수북이 담겨 있다. 영업용 가스 불 화력은 상당해서 조금만 기다리면 불이 끓는다.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라면 사리를 넣어서 먼저 익혀 먹는다. 라면 사리에서 전분기가 빠져나와 국물이 걸쭉해진다. 돼지고기가 익을 즈음 건더기를 건져 먹는다. 이 집 김치찌개는 앙칼기보다는 깔끔한 쪽에 가깝다. 젓갈을 넣지 않아 맛이 탁하지 않고 소금의 똑 떨어지는 간만 남는다.

반드시 시켜야 할 것만 같은 달걀말이는 달걀 하나 값을 생각하며 먹으면 마음이 쓰리지만 서울 시내 물가를 생각하면 먹는 것이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센 불에 노릇노릇 부치듯 구워낸 달걀말이는 양파, 당근 같은 채소가 섭섭치 않게 박혀 있다. 어떤 이들은 “집에서는 잘 안 먹게 되는데 밖에만 나오면 먹게 된다”며 달걀말이를 젓가락으로 툭툭 집어 입에 넣는다.

온 세대가 공유하는 김치찌개 노포, 굴다리식당

광화문에서 자리를 옮겨 공덕 먹자골목으로 가면 ‘굴다리집’이 있다. 이곳은 버너가 없던 시절 김치찌개를 한 번에 푹 끓여 손님에게 담아내던 방식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 넓은 실내에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과 셔츠 자락에 자켓을 손에 든 회사원, 그리고 오래 이 집을 드나들었을 것 같은 노인이 섞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집도 마찬가지로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이 메뉴에 올라와 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달걀말이는 반찬으로 내어준다는 점이다.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모두 미리 조리가 되어 나온다. 지금처럼 버너로 보글보글 끓여 먹는 방식이 아니다. 그 덕분에 김치찌개를 익히느라 기다릴 필요도 또 뜨거운 국물에 입이 델 염려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뜨겁지 않다며 불평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김치찌개를 원한다면 굳이 이 집이 올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맛은 집에서 먹던, 정확히 말하면 오래 끓여 푹 익은 김치찌개를 덜어 먹던 것과 비슷하다. 김치는 부드럽게 결결이 찢어지고 섭섭치 않게 들어간 돼지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할머니가 손으로 쭉쭉 찢어주던 묵은지처럼 저항감 없는 김치는 이 집이 지낸 세월처럼 유순하기만 하다.

테이블마다 올라간 플라스틱 통을 열면 구운 김이 세로로 촘촘히 들어가 있는데 이 김에 김치찌개 말은 밥을 살짝 올려 먹는 것도 좋다. 그렇게 먹으면 파스타를 포크로 말듯이 깔끔 떨기는 어렵지만, 김치찌개와 흰밥, 구운 김이 만들어내는 맛의 조합은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지녔다면 누구도 쉽게 거부하기 힘들다. 돼지고기를 두껍게 잘라 고추장 양념을 하여 졸이듯 볶은 제육볶음도 예전 맛과 모양을 지녔다. 돼지고기를 근수대로 정육점에 떼어와 등이 까만 식칼로 툭툭 잘라내 뒤집은 솥뚜껑에 양파, 파 넣고 술술 볶아낸 것처럼 수더분한 이 집 제육볶음도 김치찌개와 비슷한 맛이다. 이 집에 온 사람들은 너무 취하지도 너무 시끄럽지도 않게 잔잔한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앞에 두고 한 저녁을 지내다가 얌전히 잘 곳으로 돌아간다.

맛도 인심도 한국적이다, 보건옥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와 맛을 찾는다면 을지로4가의 보건옥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본래 정육점이었던 이곳은 지금도 한켠에 고기 써는 기계를 가져다 놓고 영업을 한다.

이른바 가성비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주로 받는데 가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맛에 집중해야 옳은 곳이다. 간장 양념 달착지근하게 한 불고기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고기 양이 많다. 깔리는 밑반찬을 보아도 예전 인심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 김치찌개를 보면 여느 집보다 훨씬 많은 고기양에 일단 한번 놀란다. 불고기에는 하얀 사골 육수를 쓰지만, 김치찌개에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맑은 육수를 쓰는 것이 이 집의 비결이다. 푸짐한 고기, 잘 익은 김치, 맛깔난 반찬. 이렇게 조합이 갖춰지면 남은 일은 별로 없다. 국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찌개를 끓이기만 하면 된다. 국물이 끓기 시작할 무렵의 맛은 시원하고 졸여 들어간 국물의 맛은 한국의 여름처럼 강렬하다. 졸아든 국물을 하얀 밥에 듬뿍 넣어 비비고 볶은 멸치 같은 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소주를 한 잔 마셔도 좋고 맥주 한잔 시원하게 마셔도 좋다.

이런 김치찌개 앞에서 나쁜 조합은 드물고 좋은 조합은 줄을 잇는다. 그리고 배가 부르게 먹는다. 예전에 어머니가, 할머니가 끓여주던 김치찌개를 먹듯이, 자취방에 둘러앉아 동기생들끼리 끓여 먹던 김치찌개를 먹듯이, 밥을 비우고 허기를 채운다. 김치찌개가 언제나 늘 그래왔듯이.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