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 우리가 월급날을 기다리는 이유

2020/05/08

5월의 황금연휴가 끝났다. 이제 추석까지 공휴일은 없다. 달콤한 연휴의 끝은 더욱 쓰다. 이 절망적인 사실에 전국 직장인들의 탄식 소리가 밀려오는 듯하지만,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라. 우리에게 빨간 날은 없어도 그날은 있다. 바로 월급날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보통의 날들을 버티게 하는 힘 또는 이유. 그 옛날 아버지들의 양복 안주머니를 채웠던 두둑한 따뜻함은 없지만, 월급날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은 그 어떤 알람 소리보다 경쾌하다. 이쯤 되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똑같이 기다리고, 모두를 똑같이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날. 월급날의 의미도 모두에게 같을까? 달콤한 만큼 씁쓸하기도 한 그날에 대한 이야기, 신세계인들로부터 들어보았다.

 

           

Part 1.

덕업일치를 위한 생산성 있는 탕진!
와인앤모어 서울숲점 양윤철 매니저

▍모든 직장인이 손꼽아 기다리는 하루, 월급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솔직히 기억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월급날만 되면 평소엔 잘 기억도 못 하던 매장 내 재고 목록이 귀신같이 떠오른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와인에 관심이 생기고, 예전에 한 번 마셔봐야지 했다가 잊어버렸던 와인도 불현듯 생각난다. 잠깐이나마 지갑이 두둑해져서 그런지 지름신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다(웃음). 월급날만큼은 내가 우리 매장 VIP다. 와인앤모어 파트너라면 모두 이해할 거다. 대다수는 월급에서 주류 지출 비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와인 마시는 걸 좋아하나?

많이 마셔봐야 많이 알지 않겠나. 다른 술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와인은 알고 마시는 거랑 모르고 마시는 게 정말 다르다. 와인 공부를 처음 시작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는 와인 구매뿐 아니라 와인 교육에도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수업도 알차고, 수료증과 자격증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교육기관에서 엄선해서 고른 여러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어 좋다. 교육과정도 프랑스 와인 중에서 보르도 와인이나 브루고뉴 와인,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도 토스카나 와인 같이 클래스가 세분화되어있어, 하나씩 미션 클리어하는 느낌이라 재밌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덕업일치의 삶이다.

와인 교육 인증서 컬렉터라는 타이틀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자격증, 수료증 한 장 한 장 다 돈이다(웃음). 사실 와인 공부에 몰두했던 건 커리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만족의 의미가 더 크다. 내가 좋아하는 걸 깊게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다행히 이렇게 배운 걸 실생활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매장에서 고객에게 와인을 추천할 때도 한마디 더 할 수 있다. 또 가족들과 식사하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도 와인과 음식을 매칭해주고 그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생산성 있는 탕진인 것 같다.

▍앞으로는 또 어떤 생산성 있는 월급 탕진을 계획 중인가?

요즘은 와인 테이스팅을 넘어 양조 쪽에도 관심이 생겼다. 일단 맥주 양조부터 조금씩 공부해보고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외 와이너리 투어나 브루어리 투어도 가보고 싶다. 물론 회사에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더 좋겠지만. 배우고 싶은 게 아직 많다. 또 열심히 일하면서 월급을 모아봐야겠다.

 


           

Part 2.

똑소리나는 그녀의 YOLO 라이프
신세계아이앤씨 재무팀 박혜리 담당

▍모든 직장인이 손꼽아 기다리는 하루, 월급날을 기다리며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나?

사실 월급날을 기다리며 소비하지는 않는다. 사야겠다,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면 바로 지출하는 편이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 인생은 짧으니 당장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월급날은 설레는 날이다. 모든 직장인이 공감할 거다. 한 달 중 가장 기분 좋은 날이자, 가장 기다리는 날이다. 옛날처럼 월급봉투를 직접 받지 않기 때문에 실체는 없지만, 모바일 앱에 찍힌 숫자만으로 마음이 두둑해진다. 그래서 월급날에는 한 달간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으로 화장품이나 옷 같은 작은 선물을 사기도 한다. 약속이 있다면 그날의 밥은 내가 쏜다. 나를 위한 선물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월급날의 행복과 보람을 배가시키는 거다.

▍재무팀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지출도 알뜰살뜰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보다 오히려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오직 한 번뿐)족에 가까운 것 같다.

주변 사람들도 그런 오해를 많이 한다. 회사 재무를 관리하는 만큼 월급도 똑소리 나게 관리할거라고. 사실 전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앞뒤 안 보고 일단 지르고 본다. 특히, 여행에는 월급을 아끼지 않는다. 작년에만 7개국 10개 도시에 다녀왔다.

 

▍워낙 큰 숫자만 보다 보니, 월급 통장의 숫자에는 자연스레 둔감해지는 게 아닌가?

정말 그렇긴 하다(웃음). 회사에서는 회계기준, 세법, 내부 규정까지 모두 체크하면서 십 원 단위까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내 월급은 그렇게 관리하기가 어렵더라. 그래도 괜찮다. 일단 원하는 걸 가지고 걱정은 미래의 나에게 맡긴다. 책임질 순간에는 다음 달의 월급으로 또 기분 좋게 책임진다.

▍요즘은 여행을 가기가 어려워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올해는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여행에 돈을 쓰지 못해 많이 아쉽다. 아직도 월급날이면 괜히 항공권 가격 비교 앱을 열어 가고 싶은 여행지를 입력해보곤 한다. 마음만큼은 내일이라도 비행기를 탈 준비가 되어있다.

회사에서는 정확한 일정과 회계 기준에 맞춰 업무에 열중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발 닿는 대로 움직인다. 때론 칼같이 엄격하고 때론 제멋대로이기도 하고. 이렇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나의 삶이 좋다.

어떻게 보면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게 월급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더 철저하게 업무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이것이 월급의 선순환이 아닐까 한다. 올해는 이 선순환을 위해 여행 대신 운동을 택했다. 필라테스, PT… 여름 준비는 확실하게 하고 있다(웃음).

반복되는 일상 속, 월급날이 주는 위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월급이 그저 통장을 스쳐 가는 것뿐일지라도, 그날의 기분 만큼은 노란 봉투 속 현금 뭉치만큼 두둑하다. 그러니 그 하루만큼은 기분 내보자. 한 달 내 수고한 나를 위해, 또 한 달 수고할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