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발전법 25년 변천사

2021/08/18

1997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25년째를 맞았다.
하지만,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지난 10년간 유통산업발전법은 규제 일변도로 개정되어 왔다. 유통 규제의 역사는 2012년 4월 22일 정부의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 발효와 함께, 전북 전주 지역 6개 대형 할인점이 일제히 문을 닫으며 시작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그 시작이다.

유통산업발전법 제정 25년, 의무휴업으로 상징되는 대형마트 영업규제 10년을 맞아,
유통산업발전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빠르면 내년부터 대형할인점과 같은 대규모 점포의 개설 허가제가 등록제로 전환된다.”

1996년 9월 6일 연합뉴스 기사는 당시 통상산업부가 유통산업발전법 제정안을 마련하고, 물가 안정에 기여하는 저가 지향형 대규모 점포에 대한 정책지원을 강구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소개한다.

이처럼, 유통산업발전법은 최초 입법 당시 유통구조의 선진화, 유통기능의 효율화, 소비자 편익의 증진 등 유통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다.

1996년 11월 정부에서 제출한 유통산업발전법 의안 원문의 제안 이유는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유통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여 경영여건을 개선하고, 유통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경쟁력을 강화하며, 유통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유통기업의 자생적인 경쟁력 강화 노력을 지원함으로써 급속한 유통환경변화에 대처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기반을 구축하려는 것임’

이처럼 1997년 4월 10일 공포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이름 그대로 유통 분야를 독자적인 산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즉, 유통산업발전법의 목적은 유통업의 개시와 발전에 요구되는 절차적 제도를 간소화하고 유통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법 시행 이후 정부는 유통산업에 대한 과도한 행정규제를 완화하고 물류체계 개선을 담은 시행 세칙을 제정하는 등 유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실시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97년 5월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에 따라 할인점과 백화점 등 대규모 점포의 시설 기준 중 문화센터나 스포츠시설과 같은 권고 시설 조항이 폐지됐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권고 시설 설치는 각 시도에서 개설을 준비 중인 대규모 점포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규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유통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90년~00년대는 허가주의를 벗어나 대규모 점포의 개설과 증설을 등록제로 하는 것과 직영 비율, 분양 제한, 시설설치 의무화를 폐지하는 등 기존의 유통산업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기조였다.

규제 기조의 유통산업발전법은 2010년대 들어 나타났다.

         

진입 규제 도입

2010년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급격히 확산되자, 국회는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전통산업보존구역을 지정,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록을 제한하도록 했으며, 전통산업보존구역은 전통시장 및 전통상점가로부터 500m 이내로 지정하도록 했다.

당시 국회는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제안 이유로 ‘지역유통산업의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기 위하여 전통시장이나 전통상점가를 전통산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점포 등의 등록을 제한함으로써 지역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유통산업의 균형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점포 등에 대한 진입 규제의 확대와 행위규제 도입을 시작한 셈이다.

2011년에도 대규모 점포에 대한 유통산업 규제는 계속됐다. 2011년 5월 국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영세상인 보호 차원에서 전통상업보존구역을 기존 500m에서 1km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중소 재래시장 반경 1km 내에는 대규모 점포 등 개설 등록이 제한받게 됨에 따라, 서울시 면적 80%에서 SSM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점포의 추가 입점이 제한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행위 규제 도입

2011년 12월 30일에는 가장 강력한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통과됐다. 당시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대형마트와 SSM에 대해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또, 지방자치단체장은 해당 지역 내에서 영업 중인 대형마트와 SSM에 월 1~2회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개정안은 ‘농수산물 판매 비중이 51%를 넘는 사업장은 영업시간과 의무휴업 규제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대형마트와 SSM은 영업시간 단축과 의무휴업이라는 암초에 부딪히게 되었다.

2012년 2월 전북 전주시는 전국 최초로 대형유통업체의 의무휴업일 지정과 영업시간 제한을 담은 ‘전주시 대규모 점포 등의 등록 및 조정 조례 개정안’을 공포했다. 조례안이 시행되면서 전주에서 영업 중인 대형마트와 SSM은 매월 둘째, 넷째 주 휴일에 의무적으로 휴업을 실시해야 했다.

2012년 3월 11일 전주 지역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시작으로, 4월 22일에는 전주 지역 대형마트들이 일제히 휴점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역사의 시작이었다.

2012년 6월에는 법원에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부당하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재판부가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지자체의 영업제한 처분 자체가 아니라 절차였다. 법원은 대형마트 운영제한 처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대형마트 등에 의무휴업 조치를 사전 통지하거나 이에 대한 의견 제출 기회를 주지 않은 등 영업제한 조례에 대한 절차상의 하자를 지적했다. 이후 서울시 등 지자체는 절차상 문제를 보완하며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의무휴업 추진을 이어나갔다.

         

규제 심화 지속

2013년 1월에는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추가로 단축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범위를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에서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2시간 연장했다.

이후에도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 기조는 지속되었다. 2015년 12월에는 대규모 점포 개설 시 영업 개시 60일 전까지 개설 계획을 예고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헌법재판소 결정

2018년에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나왔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지방자치단체가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도록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재판관 의견 8대1로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헌법에 규정된 경제영역에서의 국가목표 등을 구체화한 공익으로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며, “대형마트 등의 경제적 손실과 소비자의 불편 등도 생길 수 있으나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 최소한 범위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여 년 간 규제 일변도를 달리던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 기조는 2020년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 쇼핑이 가속화되면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해 7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2020 신유통트렌드와 혁신성장 웨비나’에서 토론자로 나선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이제는 ‘대형마트’ VS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 시장 VS 오프라인 시장’으로 유통환경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최근 온라인 쇼핑의 급속한 확대에 따른 대형 오프라인의 구조조정 현실을 감안할 때 규제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대형마트 점포 수는 감소 중이다. 국내 대형마트 주요 3사인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국내 점포 수는 2017년 423개를 기록한 이후 2021년 기준 409개로 줄어들었다. 14개 점포가 문을 닫은 셈이다.

과거 ‘유통산업 1위 플랫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형마트의 영업이익도 크게 줄었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마트를 살펴봐도, 2018년 2.71%였던 이마트 영업이익률은 2020년 1.08%로 1%대로 줄었다. 홈플러스는 2020년 영업이익이 40% 이상 감소했고, 롯데마트도 2020년 영업이익 190억 원으로 흑자전환 했을 뿐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년 10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자료’에 따르면 소비시장에서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70%에서 2020년 50%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쿠팡, 마켓컬리 등 이커머스 업체를 비롯해 카카오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 업체와 경쟁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과 경쟁하는 사이 일자리도 크게 줄었다. 데일리안 보도에 따르면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국내 주요 유통업체의 일자리가 6천 개 이상 줄었다. 대형마트 점포 한 곳당 협력회사 직원 포함 300명에서 500명 정도가 근무하며, 백화점 역시 2,000명에서 5,000명가량 근무하는 등 오프라인 유통업은 일자리의 보고이다. 

한국유통학회가 발표한 ‘정부의 유통규제 영향’ 보고서에서도 대형마트 점포 1곳의 평균 매출이 500억 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폐점 시 해당 점포 직원 945명, 인근 점포 직원 429명 등 총 1,374명의 고용이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불어,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매출 상승효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소매업태별 판매액 지수를 살펴보면,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도입한 2012년과 2019년 사이 소상공인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은 각각 6.1% 포인트, 11.4% 포인트 감소했다.

대형마트 폐점은 인접 소상공인에게도 악재로 나타났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학 교수팀이 발표한 ‘대형유통시설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마트 부평점 폐점으로 혜택을 본 것은 인근에 있는 다른 대형마트였다.

반면 이마트 부평점 인근 슈퍼마켓들은 오히려 상권 침체에 따른 피해에 노출됐다. 슈퍼마켓 매출액을 살펴보면, 10억 원 미만이 매출 하락을 겪은 데 반해, 50억 원 이상은 매출이 늘었다

이처럼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커지자, 국회에서는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적용되는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6월 국회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대형마트와 준대규모 점포 매장에서 이뤄지는 통신판매의 경우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시행되면 대형마트에서 영업시간(오전 10시~자정) 외 심야시간이나 휴업일에도 온라인 상품 배송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규제로 인해 힘겨워하던 오프라인 유통업계에 희소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급속도로 개편된 상황에서 오프라인 유통업계 규제에 대한 완화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 8월 12일 쿠팡이 2분기 매출 5조원을 달성하며,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쿠팡의 시가총액은 70조이다. 국내 모든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시가총액을 다 합쳐도 못 미친다. 음식 배달 시장 1위인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지난해 연간 거래액은 15조 원이다.

클릭 한 번이면 새벽배송으로 문 앞으로 상품이 오고, 밀키트와 배달 음식이 빠르게 식생활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이커머스 전성시대이다.

하지만, 유통산업발전법은 10년 전 대형마트 규제에만 집중되어 있다. 대형마트의 대규모 국산 농산물 매입, 고용 유발, 인근 상권 활성화 같은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에도 주목할 시기이다.

특히,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국가 재난 시에 국민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는 라이프라인(lifeline)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에서 편의점은 ‘라이프라인(생명줄)’이라고 불렸다. 

2020년 2월 코로나19 사태 초기 이커머스로 주문이 몰려 온라인 쇼핑 배송이 원활하지 않았을 때, 물품 지원이 절실했던 대구·경북지역에 노인이나 아동 등 쇼핑 약자를 포함한 일반 국민들에게 마스크, 생수 등 생필품을 대량으로 공급한 곳은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였다. 미국에서는 월마트와 같은 대형 쇼핑센터가 백신 접종의 전초 기지로 활약하기도 했다.

지난 25년간의 유통산업발전법의 변천사를 살펴보며, 오프라인 유통업 종사자는 물론, 국내 소비자, 국내 생산자, 소상공인 등 모두가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유통산업발전법의 제1장(총칙) 제1조(목적)는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 법은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세움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1)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
2)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세워 소비자를 보호
3)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

25년이 흐른 지금도, ‘국내 유통산업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한 기반 구축’이 시급하다.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말처럼 대형 유통업체 종사자는 물론, 국내 소비자, 국내 생산자, 소상공인 등 모두가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과 적절한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도서
○ 민만기, 유통산업발전법 해설, 누리밝힘, 2018
○ 최은홍, 대규모점포 상생의 기술, 아우룸, 2018
○ 조세형, 대한민국 유통산업발전법 : 교양 법령집 시리즈, 부크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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