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준 바이어의 프레시즘] 날씨 탓?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2022/04/15

오래전 과일 바이어를 할 때도 그렇고 최근 채소 바이어를 할 때도 그렇고 이상하게 ‘그런 일’은 꼭 벌어지더라고요.

“최우수 산지에서 차별화된 품종으로 파종 때부터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통해 이마트 창사 이래 최대 물량 기획!” 이런 행사를 기획할 땐 당연히 최상의 당도와 그동안 본 적 없는 신선함을 갖춘 과일과 채소로 준비합니다. 멋지게 디자인한 패키지 옷도 입히고, 어떻게든 전단지에 1cm라도 크게 나가게 하려고 별의별 몸부림도 칩니다. 평소 친하지도 않던 마케팅 부서 파트너에게 이때는 어찌나 친근하게 굴게 되던지요.

결국 적당한 전단지의 지면과 점포에 고지할 ISP*까지 얻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유능한 바이어의 하이라이트! 점포와의 소통을 위해 MSV**에 긴밀하게 협조를 구합니다. 언론 홍보 역시 중요하죠. 홍보팀 파트너와 언론사에 공유할 자료까지 수정을 거듭합니다. 모든 게 준비됐다! 업무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니 바이어의 자신감도 넘칩니다. 행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팀장님과 상무님, 잘하면 본부장님께도 보고드립니다. 크으~ 너무나도 깔끔한 일 처리! 스스로를 자축하며 멋지게 퇴근합니다.
*ISP: 점내 프로모션 고지물
**MSV: 본사와 점포 사이에서 영업 운영을 돕는 부서

그런데 느낌이 이상합니다. 바이어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구름이 끼더니 일주일이 넘도록 흐린 날이 지속됩니다. 작물의 생장이 더뎌지고 다습한 날씨로 곰팡이 균이 득실득실합니다. 게다가 흐린 날은 반드시 비를 동반하는데, 이럴 때 비는 하필 꼭 홍수처럼 오더라고요. 다 쓸려 갑니다. 이 험난한 상황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녀석들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머리가 벗겨질 듯한 햇볕이 내려 쬡니다. 비로 수분을 가득 흡수한 과실류, 과채류는 다 터지기 시작합니다. 엽채소는 녹아내리고요. 이마트 선별의 대표적 제외 기준인 ‘열과와 짓무름’의 탄생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녀석들은 경쟁 상대가 없으니 혼자 영양분을 듬뿍 먹고 자랍니다. 아주 탐스럽게 익어가죠. 그런데 태풍이 오기 시작합니다. 큼지막하니 약한 바람에도 이기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고, 긴 녀석들은 꺾이고, 넘어지고… 결국 엄청난 행사 발주량 중 토요일 오전 물량까지 밖에 맞추질 못합니다.

앞의 사례가 주로 여름철에 일어나는 ‘그런 일’입니다. 물론 겨울도 작물에 가혹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폭설, 혹한, 냉해 등의 위험이 있으니까요. 과일/채소 바이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물량으로 원하는 스펙에 맞춘 신선 상품이 나오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네, 맞습니다. “기후 변화”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바이어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작물을 키우는 곳의 환경을 컨트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 전체의 기후를 조정하는 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겁니다. 대신 환경을 컨트롤할 수 있는 곳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은 이미 진행 중이고 지속적으로 발전을 이루는 분야입니다. 기존의 농업기술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시킨 농장을 ‘스마트 팜’이라고 하는데요. 과수원, 비닐하우스 등에서 스마트폰, PC와 같은 IT 기기를 통해 작물의 생육 환경을 원격 제어하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환경을 유지합니다. 전 세계 농업 TOP3 중 하나라는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철저하게 스마트 팜에 투자 중이라죠. 스마트 팜은 범위도 크고 종류도 다양한데요. 환경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구분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비닐하우스

가장 기초적인 온실의 일종으로 철제 프레임에 비닐을 덮어 만든 형태입니다. 태양열을 가둠으로써 고온 환경을 유지하여 작물이 활발히 자랄 수 있게 합니다. 기존에는 비닐하우스 안에 토경재배*를 해왔지만 지금은 양액재배** 위주로 전환되고 있어 보다 직관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마트 팜처럼 온·습도계를 갖춰 세팅 값과 맞지 않을 때에는 하우스 자동 개폐기나 히터를 통해 온·습도를 조절하는 하우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작물을 재배하는데 중요한 요인인 빛과 온도를 주로 태양으로부터 얻기 때문에 흐린 날이 지속될 경우 작물 생장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는 외부 환경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기 때문에 병충해 오염이 다른 방식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병충해가 많아지는 계절에는 농약 없이는 생산이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토경재배: 노지재배. 자연 상태 혹은 지력을 이용하여 재배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재배방식
**양액재배: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수용액으로 만들어 재배하는 방법. 용액재배라고도 한다.

         
2. 유리온실

비닐하우스와 아주 유사한 형태지만 비닐이 아닌 유리를 활용하여 열의 방출을 최소화합니다. 비닐보다는 훨씬 견고하고 열 손실이 낮지만, 태양열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비닐하우스와 단점은 비슷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LED를 넣어서 부족한 광을 보완한 경우도 있습니다. 유리 온실에서는 생산 효율을 위해 토경보다는 양액재배 위주로 생산이 이루어지며, 비용이 저렴한 비닐하우스보다 더 적극적인 생산을 지향합니다. 비닐하우스 대비 천정이 높아 열에 의한 피해가 적긴 하지만 보완을 위해 온실 천정에 자동 개폐 기능이 있습니다. 최근 만들어지는 유리 온실은 외부환경과의 구분에 더 신경을 쓰면서 병충해 피해의 원천적 차단을 시도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작동 여부는 검토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3. 식물공장

공기 조성, 온·습도 그리고 태양광을 대신한 인공 광원, 토양 대신 비료를 머금은 물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설비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설비를 통해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출 수 있기 때문에 외부 환경과의 단절이 가능합니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재배할 수 있으니 병충해 피해의 위험도 상대적으로 낮아 농약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면적의 한계가 있다 보니 아파트처럼 수직으로 층층이 쌓아 면적당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매우 높기 때문에 면적당 생산량을 키우는 것이 식물공장 운영의 성패를 좌지우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스마트 팜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정보와 데이터 취합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서죠.

2019년 말 양채소 품목을 맡은 이후 20년/21년 여름에 로메인과 같은 유러피언 양상추를 만족스럽게 판매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매번 물량이 부족했거든요. 20년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21년에는 폭염과 8월 말 갑작스러운 냉해 그리고 9월 태풍까지 겹친 탓에 매출을 더욱 올려야만 하는 하반기 장사에 매번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원하는 물량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스펙으로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새로운 방식의 식물공장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웠던 높은 수준의 작물 재배 방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이 식물공장의 장점은 크게 3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장점은 식물공장이 모듈형이라는 것입니다. 식물공장은 한정된 공간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품종별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평당 생산 효율을 최대로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듈형 식물공장은 동일한 품종을 모듈별로 조금씩 다른 환경을 조성하고 이에 맞춰 실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디테일한 재배 레시피를 뽑아낼 수 있고 품종별 연구를 통해 알아낸 최적의 레시피로 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병충해에 의한 오염 시 오염된 해당 모듈만 폐기하고 소독을 하면 정리가 완료되어 리스크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장점은 병충해에 대한 철저한 대비 부분입니다. 근무자가 근무복 환복 및 소독을 위해 6단계를 거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이례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모듈별로 작기마다 정식(定植) 이후 26일간, 재배 2일간 소독이 철저하게 지켜져 재배기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병충해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여 불필요한 농약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 기본 철학입니다.

세 번째는 세 개 물류센터로의 이동이 가능한 후레쉬센터 근거리에 위치했다는 점입니다. 대량의 물량이 필요한 수도권 근교에 최고의 선도를 위해 마련된 센터 바로 앞에 있는데요. 이는 더 나아가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실천이 가능한 위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작물은 어떤 식으로 판매가 될까요? 작물을 재배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배지, 품종에 최적화된 양액 그리고 광, 온도, 습도 등이 필요합니다. 해당 식물공장에서는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살려 상품화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환경적인 요인을 기존 재배시설과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배지와 뿌리를 보존하여 상품화 이후에도 배지에 묻어 있던 양액을 흡수하며 살아 있게 한 거죠. 따라서 먹는 방식도 다른 상품과는 다릅니다. 핵가족 또는 1인 가족에게는 로메인 한 포기가 많은 양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품 구매 시 뿌리째로 냉장고에 보관하고 원하는 양만큼 잎을 따서 먹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2주 후에도 선도에 문제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신선 식품을 구매할 때 저렴하다고 샀다가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꽤 많은데요. 이것을 가성비가 높은 소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가성비란 버리지 않고 끝까지 먹었을 때에 언급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어에게는 안정적인 물량 수급을, 고객에게는 생산효율 확대로 진정한 가성비를 선사하는 것이 스마트 팜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목표입니다.

스마트 팜의 발전으로 앞으로 혹한기, 혹서기, 태풍이 휩쓸고 간 직후 등 그 어떤 시점에도 이마트에서는 안전하고 신선한 로메인을 적절한 가격에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스마트 팜의 발전에 맞춰 꾸준히 지속적인 신상품과 새로운 스마트 팜을 찾겠습니다. 아직은 스마트 팜 재배를 일부 상품에만 적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품목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자신감 있게 행사를 준비한 바이어에게 ‘그런 일’은 없겠죠?

오현준 이마트 채소 바이어

농부와 직장인 중간계의 삶, 신선살이 18년.
과일, 축산 찍고 건식품 돌아 채소합니다.
10년 넘게 좋은 것만 먹었더니 왠만한 건 맛없음.
이 느낌 그대로 전달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