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아이콘, 한국 최초의 백화점 (1편)

2015/07/11

한국 최초 백화점이 탄생한 날
우리는 근대를 만질 수 있었고 볼 수 있었다.

 

미스코시백화점의 개점과 외관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신축장면(왼) / 조명으로 장식한 미스코시 경성점 외관 야경(오)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신관 낙성 포스터 및 건축 낙성문(왼) / 조선일보 개점 광고(오)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의 전신인 미스코시(三越)백화점 경성점입니다. 1930년 10월 24일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대규모 신관을 만들어 근대적 백화점으로서 첫발을 내디뎠죠. 대지 730평, 건평 435평, 연건평 2,300평, 종업원 360여 명으로 당시 조선과 만주를 통틀어 최고 및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었습니다.

백화점 개점 당일 1층 중앙로터리와 중앙 계단에 인산인해를 이룬 고객 모습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외부 쇼윈도우(왼) /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후면 전경(오)


사진 엽서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

당시 미스코시 경성점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백화점이 아니었습니다. 선진 문화를 흡수, 전파하는 ‘문화 살롱’이자, 근대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경성 최고의 명물이었죠. 그래서 경성의 근대 문물을 소개하거나 경성 관광 기념엽서에 미스코시 경성점의 외관이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한국 최초의 백화점은 어떻게 운영됐을까?

미스코시백화점 동경 본점의 자동차 및 자전거 배달 장면, 경성점도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백화점은 모든 매장이 직영 체제로 운영되었습니다. 관리가 어려운 귀금속이나 식품류 정도가 임대였고, 매출의 10% 정도의 수수료를 적용하였습니다. 경영면에서도 철저한 정찰제와 반품제 실시, 영수증 발급 등 근대적인 백화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스코시 경성점의 또 다른 특징은 철저한 고객 서비스입니다. 매일 개점 시간 전에 전직원을 대상으로 인사부서에서 그날의 교육을 실시한 후 매장을 열었습니다. 판매원들은 한국인에겐 한국말로, 일본인에겐 일어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매장만 둘러보아도 왜 구경만 하느냐’는 눈치를 받지 않는 것도 당시의 고객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죠. 그래서 이는 차별화된 고객 응대였습니다. 이와 함께 고객이 매장이 직접 방문하게 어려운 경우에는 전화로 주문을 받아 배달을 해주었습니다. 배달을 위해 한국인 자전거 배달부가 별도로 조직되었고, 지방의 경우 미스코시 배달차가 매일 오전에 상품을 배달하였습니다.

<근대의 아이콘, 한국 최초의 백화점 미스코시 경성점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