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용진 바이어의 와이너리티 리포트] 빈 엑스포(Vinexpo)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023/03/06

빈엑스포의 와이너리티리포트

세계적인 와인 박람회로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힙니다. 매해 2월 독일에서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리는 ‘프로바인(ProWein)’, 뒤이어 4월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빈 이탈리(Vinitaly)’, 6월 프랑스 보르도와 홍콩에서 한 해씩 번갈아 개최되는 ‘빈 엑스포(Vinexpo)’입니다. 올해 빈 엑스포는 예년과는 달리 ‘와인 파리 & 빈 엑스포 파리 2023(Wine Paris & Vinexpo Paris 2023, 이하 빈 엑스포)’라는 새 이름으로,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렸답니다. 얼마 전 제가 다녀온 박람회가 바로 이곳이죠.

지난 2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 와인 박람회 ‘Wine Paris & Vinexpo Paris 2023’

프랑스 중심부로 무대를 옮긴 만큼 규모도 훨씬 커졌습니다. 42개국에서 총 3천 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참가했으며, 방문객 수는 3만 6천 명이 넘었다고 해요. 행사 기간 하루에 3만 보씩 걸을 만큼 고난의 행군이었죠. 3대 박람회 중 가장 규모가 작은 빈 엑스포가 이 정도이니, 나머지 박람회는 사전에 체력을 기르고 가야 할 듯합니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와인과 와인 산업에 대한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던 기회였는데요. 이번 편에서는 빈 엑스포에서 찾은 와인에 관한 인사이트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기후 변화는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와인 가격 상승과 ‘보졸레’의 약진

최근 극심한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기후에 민감한 와인용 포도의 재배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기후 변화가 와인 산업으로까지 직격탄을 날리고 있습니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이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요, 프랑스 유명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Bourgogne)의 경우, 올해 최악의 포도 수확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농사를 잘 지은 편인 와이너리의 포도 수확량은 70%에 그쳤고, 심각한 곳은 30%까지 떨어졌다고 해요.

이는 곧 와인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소비자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최근 부르고뉴산 와인 가격은 말도 안 되는 인상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이어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정도죠. 박람회에서도 많은 와이너리가 이미 올해 생산된 와인을 다 팔았다고 했고, 시음할 와인조차 없는 부스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루이자도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

와인 가격이 치솟으며 여러 가지 대안이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보졸레(Beaujolais)’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보졸레 누보’로 유명한 그 보졸레가 맞습니다. 부르고뉴 지역에 속한 보졸레 지방은 가메(Gamay)라는 품종으로 와인을 만듭니다.

부르고뉴의 피노누아(Pinot Noir) 생산자들이 농사를 망치고 눈 돌린 곳이 바로 이 보졸레였어요. 점점 품질이 좋아질 뿐 아니라 시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죠. 이런 이유 때문인지, 보졸레 부스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굉장히 넓었습니다.

실제 보졸레 와인을 시음해본 결과, 피노누아의 뉘앙스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어요. 보졸레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고 생각했죠. 보졸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언제쯤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지만요. 보졸레라는 이름에 ‘누보’가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보졸레의 진정한 부흥기가 될 것입니다.

        

레드 와인의 몰락,
그리고 찾아온 ‘화이트 와인’ 전성기

상세르 포도밭

프랑스 중부 루아르 지역의 와인 산지 상세르(Sancerre)의 포도밭

프랑스에 입국한 뒤 뉴스 하나를 접하게 됐습니다. 랑그독(Languedoc) 지역의 레드 와인 원액이 너무 많이 남아, 이를 공업용 알콜로 전환하는 보조금 지급을 승인한다는 내용이었죠. 와인 가격이 이토록 천정부지로 치솟는 시기에 와인이 남는다니! 바이어인 저로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기사였어요. 하필이면 제가 관심 있게 보려 했던 곳 역시, 레드 와인이 아닌 화이트 와인의 생산지였거든요.

프루니에 상세르

이번 박람회에서는 프랑스 상세르(Sancerre)와 푸이뮈메(Pouilly-Fume), 푸이퓌세(Pouilly-Fuisse)까지,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산지 관련 부스들을 집중적으로 방문해보았어요. 저의 ‘원픽’ 상세르 지역은 소비뇽블랑(Sauvignon Blanc)이 주 품종인 화이트 와인 생산지입니다. 하지만 생산량이 워낙 한정적이라 물량 확보가 어려웠습니다. 상세르 지역은 좁기 때문에 대량 생산자를 찾기 쉽지 않은 곳이거든요.

물량을 대량 확보해 가격을 낮추고 싶어도, 규모 있게 생산하는 곳이 없으니 전략을 수정해야 했죠. 부스를 하나하나 방문하며 맛본 상세르 와인은 대체로 맛과 풍미가 상향 평준화됐다고 느꼈어요. 신대륙 소비뇽블랑은 직관적인 신선함과 녹색 과일이 주는 산미와 풍미를 가졌다면, 상세르의 소비뇽블랑은 깊고 은은한 풍미에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인 입맛에는 역시,
묵직하고 과실 향 풍부한 ‘론’이 딱!

이기갈 샤또뇌프 뒤 빠쁘

박람회 기간 중 유럽인들과 와인 테이스팅을 할 기회가 생겨, 프랑스의 다양한 와인을 비교해봤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의 입맛과 가장 차이를 느낀 부분이 바로 ‘바디감’과 ‘알콜 도수’였는데요, 유럽인들은 높은 알콜 도수와 풀바디, 오크향 등의 요소를 선호하지 않았어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가진 와인들이 아주 잘 팔리죠.

그래서 우리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기 위해 론(Rhone) 와인*, 특히 에르미타주(Hermitage), 지공다스(Gigondas), 샤또뇌프 뒤 빠쁘(Chateauneuf du Pape)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이미 국내에 다양한 브랜드의 론 와인이 시판되고 있지만 가격대가 높은 만큼 ‘가성비’에 초점을 맞추고 부스를 방문했는데요, 이번 박람회를 통해 상담을 진행한 와이너리와 열심히 협상하고 있으니, 조만간 가성비 최고의 론 와인을 만나보실 수 있을 거라 기대해봅니다.

*론(Rhone) 와인: 프랑스 남부 와인 산지 론(Rhone)에서 생산되는 와인. 부르고뉴 와인보다 대체로 바디감이 묵직하고, 알콜 도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기갈 꽁드리유

론 와인 중에는 역시나 화이트 와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특히 꽃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와인인 꽁드리유(Condrieu)는 정말 가성비 와인으로 들여오고 싶은 와인이었답니다. 하지만 어딜 가나 ‘꽁드리유’ 이름이 붙으면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도 몇몇 브랜드가 수입되어 있지만, 데일리로 마실 수 있는 가격은 아닙니다.

        

와인에서도 예외 없는 저도주 열풍!
점점 발전하는 ‘무알콜 와인’

무알콜 와인 소비뇽블랑

저도주 열풍과 함께 ‘무알콜’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맥주 이외에 ‘무알콜 와인’도 속속 개발되고 있어요. 과거에는 포도 주스에 와인 풍미를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면,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와인에서 알콜만 제거하는 방식이 무알콜 시장의 대세랍니다.  

무알콜 와인은 몇 년 전부터 시음해봤지만, 이번 박람회를 통해 시음한 무알콜 와인은 몇 년 사이 수준이 꽤 높아졌답니다. 몇몇 와인은 올해 안으로 이마트 매장에서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빈 엑스포는 공간 대부분을 프랑스 와인으로 할애하고 있어서,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와인만으로 거대한 3개 관을 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큰지 알 수 있었죠. 프랑스 와인만 맛보기에도 3일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답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와인 가격 역시 많이 올랐지만, 박람회를 통해 가성비 좋은 미수입 와인들이 매년 발굴되고 있습니다. 원산지에 상관없이 다양한 와인을 마시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유럽 와인의 진가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구대륙 와인이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히 있으니까요. 같은 와인을 두 번 마시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고 하죠. 다양한 와인을 경험하면서 와인의 다양성을 느껴보고, 본인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해보는 것도 와인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다양성을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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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용진 이마트 와인 바이어
치킨에 맥주 마시듯
와인을 친근하게 알리고 싶은 와인 바이어.
평범한 일상을 와인만으로 특별하게 만들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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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와인에 힘쓰고 있는 와인계의 이슈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