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소주의 자격

2016/02/12

   
“소주나 한잔 할까?”

같이 살던 형이 물었다. 멜버른이란 이국땅의 적적한 밤, 그날따라 실존과 인생에 대해 고뇌하던 찰나에 벼락과 같은 화두가 날아들었다. 와인보다 소주가 비싼 나라, 소주 한 병에 만원이 넘어가는 이 나라에서 소주라니? 내 실존과 인생의 고뇌는 그 순간 사라졌다.

“캬, 좋죠. 형. 안주는 뭘로 할까요?”

삽 십 여년 짧은 인생 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레파토리가 다시 등장했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이윽고 병 단위로 숫자를 세게 되는 그런 밤 말이다.

 

국민술 소주의 맨얼굴

이국땅에서 내 영혼을 사로잡은 소주. 과연 그럴 자격 있는 술일까? 한국에서 싼 술인 것은 맞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나 싼 술은 있다. 우리 같은 술꾼들에게 싼 알코올은 사회가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데 그걸 증명하듯 소주 가격대의 술은 전세계에 흔하다. 호주나 프랑스는 그 술이 와인이고 러시아는 보드카며 저쪽 카리브 해 일대는 럼이다. 꼼꼼히 보면 호주나 프랑스 와인 중에는 우리나라 소주보다 싼 것도 많다. 평균소득도 우리보다 높은 나란데 말이다. “싸게 취하면 그만이지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진다.

값도 값이지만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영양학적이나 미학적 관점에서 평가할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 얼굴이 못 생겼는데 성격까지 안 좋은 꼴이다. 소주 없이는 못 사는 인구가 얼만데 그런 소리를 하냐고 하겠지만 나도 소주 마신다. 아무리 그래도 내 생각에 소주는 저열한 술이다.

일단 소주는 화학주다. 본래 소주는 누룩을 발효해 얻은 청주를 증류해서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는 알코올 도수를 조절해가며 대량으로 술을 만들기가 어렵다. 해결 방법은 아예 100퍼센트에 가까운 순수한 알코올을 짜낸 다음 여기에 물을 타고 조미료를 넣는 것이다. 이 방법은 대량 생산에 유리하지만 대신 알코올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향이나 맛이 다 날아가므로 조미료가 필요하다. 제일 많이 쓰이는 조미료는 MSG와 아스파탐이다. 현대 식품 산업이 만들어낸 이 두 물질을 가지고 참 말이 많다.

 

화학주 소주의 비밀, MSG와 아스파탐

마법의 가루, 우리 주방의 동반자 MSG를 먼저 따져보다. MSG는 ‘아지노모토’라는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처음 한반도에 소개 된 후 이제 그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한편에서는 MSG가 건강에 나쁘다 좋다,하는 논쟁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식품의 안전을 주관하는 식약청에서도 안전하다고 했으니 그 부분은 넘어가자. 그렇다고 해서 MSG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MSG가 문제가 되는 것은 입맛이 그 감칠맛에 길들여짐에 있다. 감칠맛은 단맛 짠맛 신맛 등과 함께 ‘맛있다’고 느끼게 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도 과다하면 좋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MSG에 열광함으로써 모든 음식의 맛이 엇비슷해졌다. 이건 집이든 식당이든 차이가 없다. MSG에 대한 집착은 거의 강박증 수준이다. 그런데 소주에도 입에 달라붙는 그 맛을 내려 MSG를 넣는다. MSG를 통해서 간단히 감칠맛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맛의 다양성은 파괴된다. 질을 낮은 재료를 써도 MSG만 넣으면 되니 정성도 사라진다. 굳이 노력하지 않고 빠른 길로 가려한다. 이는 음식 수준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진다. 소주도 그 하향 평준화의 결과물 중 하나다.

아스파탐으로 대표되는 인공감미료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설탕의 1/100로도 똑같은 단맛을 낸다는 아스파탐은 체중 감량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된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식품첨가물 중 하나다. 아스파탐 역시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아스파탐으로 단맛을 낸 요구르트를 먹은 쥐가 설탕을 넣은 요구르트를 먹은 쥐보다 체중이 늘었다고 한다. 총 칼로리 섭취량에도 두 그룹 간에 차이가 없었고(아스파탐을 넣었음에도), 더군다나 칼로리 섭취 차이가 없었음에도 오히려 아스파탐 섭취군 쪽의 체중이 늘어났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 한 문제다.

혹시 마가린을 기억하시는가? 간장 한 숟가락 넣고 비벼먹던 마가린밥의 그 마가린 말이다. 이 마가린이 1869년 처음 발명됐을 때 버터의 1/3 값으로 버터와 똑같은 맛과 효과를 낸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품공학의 가장 놀라운 발명이라고 여겨졌다. 그런 선전에도 불구하고 마가린은 버터와 절대 똑같은 맛이 아니었다. 100년이 훨씬 지난 21세기에 와서야 마가린의 주성분인 트랜스지방이 인체에 유해하다고 판명 났다. 사람은 한 번 보고는 모르고, 오래 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먹는 것도 똑같다. 오래, 아주 오래 봐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관점은 이거다. 유해하다고 증명되지 않으면 무해한 것이 아니라, 무해하다고 증명되지 않으면 유해하다. 즉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유죄다. 최소한 먹는 것에 관해서는 그래야 한다. 먹는 것에 있어서는 최대한 보수적이어야 한다. 소주는 보수적이라기보다는 급진적이며, 전통이라기보다는 최신의 것이다. 겨우 사십여 년 전인 1965년, 양조에 곡류 사용을 금지하면서 생겨난 것이 우리가 마시는 화학식 소주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전통주 산업이 급격히 위축된 것도 그때부터다.

 

가짜 소주, 그 한잔의 추억

한식 세계화, 고급화를 논하지만 고급 전통주가 나오지 않는 이상 쉽지 않다. 식사의 품격은 간단히 말해 한 끼에 얼마큼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신문이나 티비에선 ‘한식이 좋아요’를 외쳐대지만 한식 한 상에는 아무리 비싸도 십만 원 이상 쓰기가 힘들다. 딱 벌어지게 한 상 차려 놓으면 뭐하나. 곁들이는 술이 공장표 소주인데.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으로 최고급 대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와인 덕분이다. 비싼 와인을 고른다면 한 끼 식사는 몇 천만 원, 심지어 몇 억 원이 될 수도 있다. 그에 비해 한식은 초라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소주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 전통주 없으면 와인을 먹으면 될 게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도 참 안 된 말이다. 와인과 한식의 조합을 찾으려는 시도가 많다. 불고기에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회에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염소 고기에는 쉬라즈(Shiraz), 이런 식이다.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한식과 와인을 묶어놓으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유는 향이다. 와인의 향인 계피, 육두구, 체리, 제비꽃, 바닐라, 초콜릿, 구즈베리(Gooseberry), 라즈베리(Raspberry), 같은 것들의 태반은 서양의 허브나 향신료, 과일의 향이다. 같은 땅에서 자란 채소와 허브, 과일은 묘하게도 비슷한 향을 낸다. 그것을 먹은 사람도 비슷한 체취를 풍긴다. 자연히 같은 땅에서 자란 것들의 조합은 마치 한 배에서 난 형제자매처럼 도저히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끈끈한 뭔가가 있다. 일식에는 국화향 사케가 어울리고 중국음식에는 돌배향 나는 중국술을 마셔야 제 맛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정말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애정과 관심이 있다면 공장에서 찍어내는 소주를 마실 게 아니라 돈을 조금 더 들여 진짜 소주를 마셔야 한다. 돈이 없어서 가짜 소주를 마실지언정 그것이 좋은 것이라느니, 전통이라느니 같은 말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마시는 게 가짜라는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짜 소주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며 더 좋은 술을 마시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럼에도 그날 그 형과 가짜 소주를 마신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다. 갓 스무 살에 어른이 된 것처럼 소주 몇 병을 나눠 마시고 비틀거렸던 친구가 그리웠고, 매일 소주 한 병을 반주 삼아 드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리웠다. 그러나 아무리 쌓인 정과 추억이 한 가득이고, 낯선 이국의 쓸쓸한 밤, 싸구려 소주 없이는 가늠할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있을지라도, 가짜는 가짜다. 두꺼비가 그려진, 그 소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