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영화가 사랑한 그림

2017/08/24

 

‘나무와 두 여인’, 박수근, 1962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커다란 고목. 그리고 그 아래 두 여인이 있습니다. 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서민적 정경을 화폭에 새긴 주인공은 한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 화백입니다. 이 그림은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의 출세작 <나목>의 소재가 됐을 뿐 아니라 실제로 책의 표지로도 쓰였답니다. 특별히 애정을 쏟은 주제였던지 같은 주제로 그린 것이 여러 점 남아 있지요. 참 담담하고 소박한 작품이에요.

박수근 화백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습니다. 아기 업은 아낙들, 노는 아이들, 물건 파는 행상… 왜 늘 똑같은 것만 그리느냐고 누가 묻자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다지요. “나더러 똑같은 소재만 그린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의 생활이 그런데 왜 그걸 모두 외면하려 하나.” 박수근 그림 특유의 짙은 향토적 서정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캔버스에 흙을 바른 듯, 거친 화강암에 끌로 새긴 듯, 진하게 우러나는 황톳빛 색감하며 거칠고 투박한 질감이 어우러져 한국적인 그림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해주지요. 박수근 화백의 큰 따님이신 박인숙 씨는 고인의 작품을 볼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서 한 줌의 흙을 들고 고향의 냄새를 맡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박수근 화백이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서민화가,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유일 겁니다.

미술을 조금 더 깊이 공부하다 보면 꼭 한 번은 마주치게 되는 질문이 있어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은 과연 뭘까? 참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미술을 오래,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한 분들에게도 그리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지구상 어느 나라에든 이른바 국민화가라 불리는 인물 한 명쯤은 있게 마련입니다. 무슨 기준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나라별로 국민화가란 칭호를 얻은 화가들은 정말 많더군요.

유달리 한국을 사랑하는 세계적인 영화배우 톰 크루즈(Tom Cruise). 내한할 때마다 스스럼없이 팬들 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함께 찍는 이 훈남 배우가 출연한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을 기억하십니까? 국내 개봉 당시 관객 150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치면서 흥행에는 완전히 실패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퍽 인상 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그림 한 점 때문이에요.

영화 <오블리비언(Oblivion, 2013)> 中

영화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톰 크루즈 부부가 손을 꼭 잡은 채 폐허가 된 도서관에 걸려 있는 그림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림 앞에서 톰의 아내가 이런 말을 하지요. “저걸 보니 집 생각이 나.” 이 그림은 그 뒤에도 한 번 더 등장하는데요.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최후의 일전이 끝나고 화면이 암전됐다가 다시 밝아지면 같은 그림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그림은 미국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1917~2009)의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라는 작품이에요. 그렇다면 하고많은 그림들 중에서 왜 유독 이것이었을까요? 실마리는 집 생각이 난다는 여자 주인공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딱 잘라 말하면 이 그림은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영화 속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파괴된 채 버려진 불모의 땅이지요. 하지만 두 주인공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톰 크루즈가 작은 화초를 심은 화분을 애지중지한다든지, 폐허로 변한 미식축구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열광적인 함성을 떠올리는 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과거에 대한 아날로그적인 향수와 ‘기억’을 줄거리 전개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시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톰 크루즈가 실은 복제된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부부였던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건 결국 서로 사랑했던 ‘기억’, 바로 그거였어요.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1948

그러니 영화를 보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보편적인 감성을 전달해줄 수 있는 대표적인 그림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회색빛으로 잔뜩 찌푸린 하늘과 맞닿아 더 스산함을 주는 가을 들판을 무대로 보기 딱할 정도로 마른 체구의 여자가 멀리 초원 위의 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풍경도, 여자의 뒷모습도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느 신나는 유행가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행복에 겨운 분위기와는 아주 딴판이죠. 들판에 주저앉아 덧없이 손을 뻗은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집으로 가는 길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과연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 안타까움과 절실함이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와 어울려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림 속의 여자는 크리스티나 올슨(Christina Olson)이란 실재 인물입니다. 화가 아내의 이웃 친구인 크리스티나는 소아마비를 앓아 평소 두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다고 하지요. 들판에 앉아 있는 크리스티나의 뒷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앤드루 와이어스는 1948년 나무 판에 *템페라(tempera)라는 고전적인 재료로 이 그림을 완성합니다.

*템페라(tempera) : 달걀 노른자, 벌꿀, 무화과즙 등을 접합체로 쓴 투명 그림 물감

미국인들이 고향 하면 얼른 떠올릴 만한 전형적인 미국의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삶과 죽음, 고독과 갈망이 교차하는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냈습니다. 훗날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이 그림은 그래서 ‘가장 미국적인 그림’이란 평가 속에 오늘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가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영화의 주제의식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해주는 이미지로 사용됐던 거고요.

그런데 이 그림은 또 다른 영화 한 편과도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한때 영화광을 자처했던 분이라면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이란 영화감독을 기억하실 텐데요. 대중적인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아주 독특한 취향을 즐기는 컬트영화 팬들에겐 <몬티 파이튼의 성배(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 1975)>, <타임 밴디트(Time Bandits, 1981)>, <브라질(Brazil, 1985)>, <피셔킹(The Fisher King, 1991)>, <12 몽키즈(Twelve Monkeys, 1995)> 같은 작품으로 꽤 유명한 분입니다.

이 감독이 2005년에 만든 영화 <타이드랜드(Tideland, 2005)>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미국의 전원 풍경이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와 매우 비슷해서 그림만큼이나 화제가 됐어요. 마침 영화가 최근 국내에서 재개봉되기도 했지요. 테리 길리엄 감독은 실제로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첫 장면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위에 있는 영화 속 장면을 한번 보세요. 배경이나 구도가 와이어스의 그림과 정말 비슷하지 않나요?

영화 <타이드랜드(Tideland, 2005)> 中

그렇다면 그림과 영화는 도대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영화 <타이드랜드>는 보통 ‘성인 잔혹 판타지’로 불리는 데에서도 보듯 관객을 시종일관 불편하게 만드는 잔혹한 내용 전개를 보여줍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영화 속 미술관(마로니에북스, 2011)>이란 책에서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는 와이어스의 그림에도 ‘고독과 갈망, 불안’이 감돈다면서, 그림이 주는 “불편함과 괴이한 교교함”이 영화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화가와 영화감독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것이겠지요. 좋은 작품은 오래 기억될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깊은 감동을 줍니다. 명화라 불리는 그림들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감상되고 연구되고 복제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