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그림으로 피어난 우리 땅 ‘독도’

2018/10/25

그 섬에 화가가 있었습니다. 하늘은 푸르렀고, 바다의 푸름은 그보다 더 깊었지요. 파도 소리, 새 소리 가득한 섬. 벗인 양, 연인인 양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 짓는 모습이 얼마나 정겨웠던지. 육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외딴 섬은 화가의 가슴을 한없이 요동치게 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두 섬이 그토록 오랜 풍파를 꿋꿋이 견뎌온 어엿한 우리 땅이었으니까요. 동도에서 서도를 바라보는 화가의 붓은 그림 속에서 아련한 메아리를 불러냅니다.

류인선, <독도-동도에서 서도를 바라보다>, 23.3×40.9cm, 캔버스에 아크릴과 오일 파스텔, 2015

언제나 시릴 그 바다와 또 언제나 맑고 신선할 그 공기와 괭이갈매기 소리…! 제가 본 독도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아주 오래 전 울릉도로 갈 때 본 동해는 그 깊이가 얼마나 아득한 건지 검은 돌 같기도 했는데, 하얀 파도와 어울린 독도의 물빛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푸른빛이었습니다. 괭이갈매기(독도의 주인인 듯한)의 배설물이 척박한 환경을 비옥하게 만들어주었는지 소리쟁이와 방가지똥은 바람에도 꺾이지 않을 만큼 튼실해 보였습니다. 철 이른 연보랏빛 해국 꽃이 드문드문 보이고 개갓냉이 노란 꽃은 무리를 이뤄 독도에 노란 옷을 입혀주고 있었습니다. 바위채송화와 갯제비쑥도 곱게 연초록 융단을 짜고 있을 즈음, 잊지 못할 2015년 5월 16일이었습니다.

– 작가의 말

화가가 독도에 첫 발을 내디딘 건 한창 꽃피는 5월이었습니다. 소리쟁이, 방가지똥, 개갓냉이, 갯제비쑥… 정겨워서 더 고마운 꽃들이 뿌리 내리고 번성한 섬. 육지에서 그렇게도 먼 곳에서 어쩌면 그렇게 살뜰하고 의젓하게 뭇 생명들의 싹을 틔워 올렸을까요. 그 대견함에 문득 가슴이 뭉클해지는 건 비단 화가뿐이었을까요. 긴 세월 모진 풍파를 말없이 견뎌낸 저 꽃들이야말로 독도의 어엿한 주인이 아닐는지요.


류인선 <독도-풀꽃 사이로 보다 1, 2, 3>, 116.8×91cm, 면천에 한지와 채색, 2015

이 땅의 온갖 꽃에 남다른 애정을 품은 화가가 독도의 꽃들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겠지요. 동양화가인 류인선 작가가 2015년에 완성한 그림 <독도-풀꽃 사이로 보다>입니다. 세 그림이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는데요. 화폭 아래 배꼼 고개를 내민 풀꽃들이 마치 독도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같지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의 시선이 풀꽃들의 시선과 겹쳐져 있어요. 생명으로서의 꽃을 존중할 줄 아는 화가의 바로 그 ‘눈높이’ 덕분에 이 작품은 독도를 묘사한 그 어떤 그림보다도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류인선 <독도수호바위 풍경>, 91×182cm, 면천에 한지와 채색, 2015

 

화가들, 독도를 그리다

독도를 그린 화가는 꽤 많습니다. 독도를 주제로 한 미술 전시회 또한 그리 드물지 않고요. 위에 소개한 류인선 작가의 작품들도 2015년 10월 28일부터 12월 13일까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개최된 특별기획전 <독도 오감도>란 전시회에서 대중에 선보였는데요. ‘문화를 통한 독도사랑’을 표방한 예술가들이 뜻을 모아 꾸린 라메르에릴(바다와 섬)이란 이름의 사단법인이 기획한 첫 전시였지요.

우리 화가들에게 독도는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잊힐 만하면 불거지는 일본의 도발에 화가들은 붓으로 답했습니다. <독도 오감도>를 시작으로 같은 주제로 전시회가 모두 네 차례 열립니다. 가장 최근 전시는 지난해 11월 29일부터 12월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한국의 진경 – 독도와 울릉도>였습니다. 일부러 찾아가긴 멀지만 가까이서 독도를 볼 수 있었던 건 화가들의 그림 덕분이었죠.

3,200개가 넘는 우리나라의 섬 가운데 가장 많이 그려진 섬. 이 땅의 자연지형 가운데 가장 많이 그려진 대상물. 독도는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겠지요. 그러니 그 많은 독도 그림을 역사라는 틀 안에만 꽁꽁 가둘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림은 무엇보다 그림으로 보면 되는 거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어떤 그림들은 더 특별한 예술적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김선두 <독도-작은 리조트>, 145×112cm, 장지에 분채, 2017

정일영 <독도>, 97×162cm, 캔버스에 아크릴, 2017

하태임 <독도>, 91×116.8cm, 캔버스에 아크릴, 2017

임만혁 <독도 17-1>, 75×213cm, 한지에 목탄, 2017

김덕기 <원더풀 독도>, 193.9×259.1cm, 캔버스에 아크릴, 2015

 

 

‘용의 기운’을 품은 신비의 섬 독도

독도만 그리는 화가가 과연 있을까요. 글쎄요. 과문한 탓인지 아직 그런 화가를 만나보진 못했습니다. 그럼 독도를 주제로 개인 전시회를 연 화가는 있었을까요. 찾아보니 실제로 있더군요. 모르긴 몰라도 처음 만난 독도는 화가에게 말할 수 없이 깊은 예술적 영감을 주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시는 못 올 것처럼 동도에서 서도까지 독도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눈과 가슴에 한가득 담아가는 것도 모자라 붓을 들었겠지요.

2015년 6월, 서울 대학로 혜화아트센터에서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립니다. 전시 제목은 <조광기 독도 아크릴 드로잉 전>. 엿새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화가가 독도 그림만을 모아 대중에 선보인 건 아마도 처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전시회 포스터를 보면 독도의 두 섬 가운데 동도 그림이 보이고 그 아래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조금 떨어진 바다에서 본 동도의 모습은 한 마리 용이 꿈틀거리는 듯…”

조광기 <독도의 꿈>, 77×107cm, 메트지에 아크릴 드로잉, 2015

그런데 참 묘하게도 독도의 모습에서 용을 떠올린 화가가 또 있었답니다.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 화백의 <독도>입니다. 올해 2월 7일부터 3월 4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된 박 화백의 개인전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에서 공개된 그림인데요. 가로 8미터로 전시장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장대한 규모의 이 작품은 압도적인 힘으로 관람객을 사로잡는 대작입니다. 독도 그림으로 이보다 큰 작품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요. 붉은 여의주를 움켜쥔 신성한 해룡(海龍)의 대갈일성이 그림 밖으로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것만 같습니다.

박대성 <독도>, 218×800cm, 종이에 잉크, 2015

예술가들만 감지해낼 수 있는 어떤 강한 에너지가 전해진 걸까요. 2015년의 어느 하루 8시간 동안 독도를 만나고 돌아온 화가는 곧바로 독도를 그리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그림 12점을 대중 앞에 선보입니다. 독도가 아니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그림이었고 전시회였을 겁니다. 독도 그림으로 처음 개인전을 연 서양화가 조광기 화백의 독도 그림은 지금까지 보아온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또 다릅니다. 독특하게 아크릴 물감을 드로잉의 재료로 활용했는데, 바탕 재질에 따라 질감의 차이가 도드라지는 게 특징이지요.

조광기 <독도의 꿈>, 90×71cm, 캔버스에 아크릴, 2015

(좌) 조광기 <독도의 꿈>, 107×77cm, 메트지에 아크릴 드로잉, 2015 (우) 조광기 <독도의 꿈(일출)>, 90×71cm, 캔버스에 아크릴, 2015

조광기 <청산사유(독도)>, 60×50cm, 혼합재료, 2018

시인이 뜨거운 우리 말글로 그려낸 독도. 아마 독도를 노래한 시인 역시 꽤 많겠지요. 그 중에서 독도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는 아마도 도종환 시인의 <독도>일 겁니다. 때론 감상적이면서도 때론 유장한 시어들이 빚어내는 깊은 울림에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데요. 조광기 화백이 최근에 그려낸 독도 그림 한 점은 마치 도종환의 시를 붓으로 풀어낸 것처럼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하늘이며 땅이며 온통 푸른 빛 안에서 한 덩어리가 된 독도, 푸름 안에 깃든 독도였지요.

그림 속에서 독도가 말을 걸어왔다

김준권 <山韻-0901>, 400×160cm, 수묵목판, 2009

얼마 전 벼르고 별렀던 한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올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당시 회담 못지않게 화제가 된 미술품이 있었지요. 두 정상의 뒤로 멋들어진 첩첩 산줄기가 장대하게 펼쳐진 이 판화 작품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목판화가 김준권의 <산운(山韻)-0901>입니다. 어떻습니까.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줄기 너머에서 산의 소리가 들리시나요?

하지만 전시장을 가만 돌아보던 제게는 그보다 더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었답니다. 바로 독도 그림이었어요. 며칠 동안 독도에 관해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글을 써오던 차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공간에서 또 다른 독도를 만난 겁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전시장을 돌면서 몇 번이고 독도를 눈에 담았지요. 독도를 그린 꽤 많은 작품을 봐왔어도 ‘독도의 아침’을 담아낸 작품은 처음 만났습니다. 바로 이 작품입니다.

김준권 <독도의 아침>, 30×40cm, 유성목판, 2018

이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잠시 판화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목판으로 찍어냈다는 걸 알고 다시 보면 정말 믿기지 않는 그림입니다.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을 기준으로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저토록 미세한 색의 변화를 판화로 표현해냈다는 데 놀랐습니다. 아침 해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면서 자욱했던 해무가 조금씩 걷히는 그 순간의 독도를 참으로 절묘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전시장에는 이 그림 양쪽 옆에 독도의 동도, 서도가 나란히 걸려 있었어요. 작가의 솜씨인지, 전시기획자의 감각인지는 몰라도 색이 입혀진 독도 그림이 그렇게 동쪽과 서쪽에서 독도의 아침을 호위하듯 서 있는 모습마저도 퍽 특별해 보이더군요. 작품을 본 사람들은 판화라는 사실 자체를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지요. 붓으로 그렸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섬세한 선과 결의 묘사라든가 색채의 조화가 돋보이는 그림이었습니다.

(좌) 김준권 <독도-서도>, 89×60cm, 채묵목판, 2014 (우) 김준권 <독도-동도>, 89×54cm, 채묵목판, 2014

 

 

독도가 전하는 메시지

꽤 많은 독도 그림을 찾아보고 살피는 내내 책 한 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설가 김탁환의 <독도평전>인데요. 제목이 참 독특하지요? 사람도 아닌 섬의 평전을 쓴다니, 그 발상이 참 남다릅니다. 독도가 품은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책이 발간된 2005년까지 독도의 생애를 적어나간 작가는 그 이후의 삶을 여생(餘生)이라는 제목 아래 짧게 기록합니다.

까맣게 모른 채 그냥 지나갈 것 같아 적어둡니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입니다. 독도는 멀지만 그림은 가깝잖아요. 그래서 독도 그림을 애써 찾아다니고 수없이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독도를 만나보려 했던 겁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은 유행가 가사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독도는 소중한 우리 땅입니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