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소장의 리테일 프리즘] 트리플 환경변화에 직면한 유통시장

2022/03/22

“몇십 년 동안 아무 일도 없다가 단 몇 주 사이에 수십 년 동안 일어날 법한 사건이 동시에 벌어질 수도 있다” 저명한 경영학자 스콧 캘러웨이의 최근 도서 <거대한 가속>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과 같은 시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이 2년이 넘도록 지구촌을 휩쓸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환경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가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발할 만한 거대한 환경의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면서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마치 브레인 포그(Brain Fog)*에 갇힌 것처럼 지금 우리 유통시장도 좌표와 방향성 인지를 어렵게 하는 짙은 안개 속에 있다. 불확실성이 높기에 앞날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거의 신의 영역에 가까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묵직하게 반향을 줄 수 있는 트리플 환경변화가 몰고 올 영향을 가늠하고 대비하는 일은 시장 참여자들의 숙명이다.
*브레인 포그 :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느낌이 지속돼 생각과 표현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우선, 코로나 팬데믹이 조만간 정점을 찍고 경제가 리오프닝을 맞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62만 명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30만 명 대로 줄어드는 양상이다. 방역정책의 패러다임도 팬데믹에서 엔데믹 관리 체계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방역패스를 중단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서서히 완화하고 있다. 리오프닝은 소비의 중심축을 다시 한번 크게 이동시킬 것이다. 팬데믹 시기에 홈코노미에 쏠렸던 소비는 리오프닝과 함께 외출, 여행, 레저와 같은 소비를 증가시키는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계절적으로도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과 맞물려, 소비심리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한 켠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이러한 기대감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글로벌 시장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합쳐서 2%가 채 안 되지만, 원유, 천연가스, 곡물 등 원자재 생산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공급 불안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상승할 것이고, 이는 제조원가와 인플레 압력을 높일 것이다. 물가가 치솟으면 소비자들의 실질 가처분소득이 감소해서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전쟁이 장기전보다는 3개월 이내 단기전으로 끝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렇게 되면 스태그플레이션(경제침체ㆍ고물가)은 모면할 것이다.

그러나 단기전이든 장기전이든 정도의 차이만 있지 유가와 물가를 기존대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경제와 소비패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성장ㆍ고물가 상황에서는 가급적 외출 횟수를 줄이고 식품이나 생필품 중심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앞서 외출, 여행 관련 소비를 증가시키는 리오프닝의 효과를 상쇄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전쟁이 유발하는 저성장ㆍ고물가 요인이 리오프닝 시기에 나타나는 소비패턴을 둔탁하게 할 수 있다. 소비심리 둔화와 더불어 직면하게 되는 물류비, 판관비, 제조원가의 상승은 산업계의 마진에 하방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장기간의 팬데믹을 거치면서 친환경 활동,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책임 등 ESG 경영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팬데믹이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로 인해 유발되고 있다는 가설이 지지를 얻으면서 투자자, 고객 등 모든 이해관계자로부터 친환경 경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심화된 양극화 현상을 인플레가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사회적 책임경영에 대한 니즈도 증가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 지역사회와 더불어 성장해 나가는 것은 기업의 소명이다. 또한 대부분 가치 있는 일들이 그렇듯이 기업의 ESG 실천도 비용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세 가지 환경변화가 유통업계에 미칠 영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비용ㆍ저마진 구조의 장기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직면해서,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두 가지 중요한 핵심 전략은 ‘비용구조 혁신’과 ‘플라이휠(Flywheel)* 장착’이 될 것이다. 전략적 비용과 비전략적 비용을 구분해 비전략적 지출을 줄이고 자동화 등을 통해 비용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광고, 풀필먼트 사업 등을 통해 유통과 시너지를 내면서 유통부문의 마진율 하락을 보완하는 ‘플라이휠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절실하다. 이 일을 해내는 소수의 기업과 그렇지 못하는 다수의 기업 간 양극화는 가시화될 것이다. 1918년 파괴적 스페인 독감 뒤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가 왔듯이, 이 힘든 시기 뒤에 소비시장이 붐을 이룰 때 기업 간 양극화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지금의 유통시장이 중요한 변곡점이었다고.
* 플라이휠 전략: 비즈니스에 필요한 다양한 항목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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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 소장
현재에서 미래를, 미래에서 현재를 부감하며
리테일의 변화 방향을 탐색하는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