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덕 셰프의 요리와 그리고] 킬러들을 위한 마인드풀니스?!

영화 존 윅 시리즈는 원샷원킬,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르고 화려한 권총 액션으로 유명한 영화다. 존 윅 시리즈는 ‘후카시 그 자체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카시(ふかし)란 남에게 대단하거나 멋있어 보이도록, 어깨나 눈에 잔뜩 힘을 주거나 목소리를 깔거나 말을 과장하여 하는 따위의 태도를 속되게 이를 때 쓰는 일본어다. 신나는 킬링 타임 영화지만 평소 즐겨보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나는 뭔가 생각할 여지나 여운을 길게 남기는 영화가 좋다. 나이 들수록 이런 경향은 더해진다. 모두가 보았을테지만 수컷들 사이에선 아무도 본 척을 하지 않는, <노트북> 같은 영화를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보고 또 보며 질질 짜기까지 한다. 아무튼 그런 내가 왜 <존 윅>을 열심히 보았을까? 바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콘티넨탈 호텔’ 때문이다.

이 영화 속 호텔은 단순한 공간 배경이 아니다. 콘티넨탈 호텔은 그 자체로서 존 윅 시리즈의 거대한 세계관을 상징한다. 세계 최고의 킬러들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는 설정이 존 윅 세계관의 핵심이다. 콘티넨탈 호텔 안에서는 킬러들끼리 절대로 서로를 죽이지 못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즉각 처단한다는 규칙이 있다. 즉 콘티넨탈 호텔은, 그 어떤 사람도, 무슨 일이 있어도, 예외 없이 쉬어야만 하는, ‘절대적 휴식의 공간’이다. 영화 속 콘티넨탈 호텔에선 전용 크레디트 카드를 사용한다. 이건 굿즈로도 판매되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카드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An oasis of calm and civility 평온과 정중함의 오아시스” 30년 호텔리어인 나로선 매료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설정이다. 물론 영화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스토리이긴 하지만, ‘절대적 휴식의 공간’이라는 개념만큼은 절대적으로 차용해오고 싶었다.

존 윅 시리즈를 보면서 한편으론, ‘킬러들에게 제공하는 마인드풀니스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상 자체가 천재적이다. 이런 발상을 한 사람은 요리도 우리 만큼이나 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을 섞어서, 더 나은 상태나 존재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요리의 기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는 자신의 마음과 현재 상황을 인식하는 상태로, 불안과 초조함 대신 평안을 얻는 것을 뜻한다. 일종의 자기존중법인데, 이것을 음식과 연결한 것이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이다. 이것은 음식에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 오로지 먹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은 마음에 여유가 없거나 복잡한 생각들 때문에 방금 먹은 음식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늘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식일 때가 많다. 존 윅의 세계에선 킬러들조차 누리는 평온과 자기 존중의 시간을 우린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난 영화 속 명대사 하나를 떠올렸다. “시 비스 파켐, 파라 벨룸(Si vis pacem, para bellum)” 라틴어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뜻이다. 영화 <존 윅3: 파라벨룸>에 등장하는 대사다. 물론 우리 호텔엔 총과 무기를 판매하는 와인샵은 없다. 하지만 고객들의 마인드풀니스를 위해 불과 칼, 온갖 쇠붙이들을 휘두르는 주방이라는 전쟁터가 있고, 여기서 날마다 전투를 치르는 요리사 전우들은 있다.

사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최근 나의 ‘인생 문장’으로 등극한 대사다. 2021년 5월 25일. 코로나19 팬데믹의 한복판,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이 오픈했다. 난 새 호텔의 레스토랑 오픈을 위해 그해 3월부터 강남의 현장으로 출근했다. 석 달에도 미치지 못한 짧은 준비 기간 동안 나는 나름대로 마음고생이 좀 심했다. 저 인생 대사는 그때 내 입에 붙었다. 오픈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주방 인력들을 알아보고, 주방 장비들의 작동이 원활하게 되는지 점검하기 위해 지하 2층부터 36층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던 기억들. 엘리베이터로만 이동해야 하는 24층과 36층을 돌아봐야 하는 업무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한편 24층 뷔페 ‘콘스탄스’는 공사가 예정보다 늦어져 아주 촉박하게 주방을 세팅해야만 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상황이니 이에 맞도록 세세한 모든 사안들을 조정해야 했고, 여기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했다.

주방 장비들과 주방용품 정리, 식재료 정리, 먼지와의 전쟁, 넉넉하지 못한 BOH(Back Of House 서비스를 위한 레스토랑 뒤쪽 공간)는 항상 스트레스였다. 여기에다 조리 직원과 서비스 직원들의 메뉴 숙달과 교육, 그릇과 기물을 세척하는 스튜어딩 직원들 간에 업무 협업…. 모든 구성원들의 팀워크가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 끝도 없이 교육과 연습을 반복해야 했다. 고된 일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까지 계속 생기면서 거의 절망적인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남은 직원들은 할 수 있다는 의지와 신념으로 버티며, 더 똘똘 뭉쳤다. 오히려 전쟁터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강한 연대감을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사를 함께하는 전우애랄까, 그런 비슷한 감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만큼 모두에게 고맙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벌써 기억이 까마득하다.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고의 호텔을 이용하려면 그만큼 비용도 높다. 그래서 최고의 호텔은 고객의 상상을 넘어서는 만족감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고객의 편안함과 행복감 뒤에서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듯한 호텔리어들의 노고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고객들은 호텔리어들의 이런 피와 땀과 눈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최상의 서비스를 보여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노력한 결과가 아닌, 노력 그 자체를 보는 것은 자칫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간혹 우리의 노력까지 기꺼이 이해하는 그런 고객들도 있다. 최고의 고객이다. 그런 고객들을 만날 때 우린, 실력 위에 마음까지 얹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말이 나온 김에 자랑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서울 조선 팰리스 호텔이 올해 ‘2022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에서 2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세계 최고의 신규 호텔’ 부문과 ‘호주 및 아시아 최고의 신규 호텔’ 부문이다.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는 여행 업계의 오스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조선 팰리스만이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모든 역경을 함께 극복한 호텔 오픈 멤버들 모두에게 이 지면을 빌려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이제 1년. 또 하나의 조선호텔 100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인 것이다.

신세계그룹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는 미디어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콘텐츠 사용 시에는 신세계그룹 뉴스룸으로 출처 표기를 부탁드립니다.

유재덕 조선 팰리스 EXECUTIVE CHEF
“요리는 특별한 것이지만, 음식은 위대한 것이다!”
100여 년 전통의 조선호텔앤리조트에서
지난 30년간 함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