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앤모어 양윤철 점장의 마셔보고서.txt] 가을엔 남호주 와인을 마시겠어요

2022/10/18

안녕하세요, 와인앤모어 서울숲점 점장 양윤철입니다. 식품영양과 외식조리 실습에서 접한 와인 한잔을 시작으로 와인에 빠져들었습니다. 이후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와인을 공부하던 중 평생의 스승인 이인순 선생님을 만나 와인 업계에 발을 디디게 됐습니다. 아카데미 수료 이후 이탈리안 레스토랑 비노에서 홀캡틴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와인앤모어 서울숲점 점장이 되어 완벽한 ‘덕업일치’를 이뤘습니다. 이와 함께 서일대 식품영양과에서 와인특강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와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와인앤모어의 행사 상품들을 직접 마셔보고 전해드리겠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 완연한 가을을 맞아 준비한 ‘마셔보고서’의 첫 번째 주제는 바로 ‘남호주 와인’입니다.

보통 호주 와인을 찾는 고객에게 ‘남호주’를 권하면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바로사 밸리’에는 바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호주 와인 생산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정작 바로사 밸리가 호주 어디에 위치하는지, 어떤 생산지인지 아시는 분은 드뭅니다.

저는 고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남호주를 ‘경상도’에 비유하곤 합니다. 남호주가 경상도라 치면 바로사 밸리는 ‘대구’, 맥라렌 베일은 ‘부산’으로 빗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산지의 위치와 느낌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로사 밸리는 육지 안쪽에, 맥라렌 베일은 해안 쪽에 있는 산지이기 때문이죠. 물론 자세한 설명이 아닐 수 있지만 와인 한잔 즐기려고 하시는 분들께는 딱 좋은 비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드니 여행 중의 일이었습니다. 약 열 군데의 와인샵을 방문했을 때 현지 매니저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는데요. 바로 “신대륙 와인을 좋아하냐, 유럽 와인을 좋아하냐” 였는데요. 매니저는 신대륙을 좋아한다고 하면 바로사 밸리의 와인을, 유럽 와인을 좋아한다고 하면 맥라렌 베일을 추천했습니다.

이쯤 되면 ‘정말로 지역별 와인 맛을 느낄 수 있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건 전문가들만 느끼는 차이 아니야?’라고 하실 수도 있죠. 보통 와인을 마실 때 와인의 품종, 생산지 등을 세세하게 따져가며 마시지는 않기 때문에, 지역별 맛 차이를 구분하기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모두 느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첫 번째 ‘마셔보고서’에서는 와인업계 전문가 3명, 업계와 무관한 일반인 3명과 함께 ‘남호주’라는 주제로 두 가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했습니다. 와인 가격은 모두 5만 원 이하로, 와인앤모어의 10월 남호주 와인 행사 상품으로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테이스팅:
남호주 생산지 별 쉬라즈 와인

첫 번째 테이스팅 주제는 남호주 산지에서 생산한 쉬라즈(Shiraz)입니다. 쉬라즈는 호주의 가장 유명한 품종 중 하나로, 펜션 등지로 놀러 가는 고객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와인이기도 합니다.

이번 테이스팅은 남호주의 대표 생산지 맥라렌 베일(McLaren Vale),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 패서웨이(Padthaway)에서 생산된 쉬라즈로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생산지별로 테이스팅할 때는 품종, 생산자, 레벨을 동일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요. 아쉽게도 이번 테이스팅에서는 패서웨이만 다른 생산자(파머스 립)로 진행했고, 맥라렌 베일과 바로사 밸리는 투핸즈 픽쳐 시리즈로 진행했습니다.

‘투핸즈 와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와인이 바로 엔젤스 쉐어 쉬라즈입니다. 와인병에 그려진 두 손으로 포도를 받치고 있는 그림은 투핸즈라는 브랜드명을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하죠. 하지만 엔젤스 쉐어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바로사 밸리 지역의 와인이 아닙니다. 투핸즈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에서도 바로사 밸리 와인의 판매량이 압도적인 만큼, 과연 다른 지역인 맥라렌 베일 출신의 엔젤스 쉐어가 바로사 밸리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했죠.

드디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시작했습니다. 일반인 평가단에게는 ‘한 병을 마신다면 어떤 와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물었고, 업계 평가단에게는 각자가 느낀 테이스팅 결과를 물었습니다.

모든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본 결과, 1위를 차지한 건 역시 바로사 밸리 출신의 날리듀즈 였습니다. 베리류의 진한 과실 향이 풍부하면서도, 적절한 산도와 부드러운 탄닌, 적당한 알코올 도수로 일반인도 전문가도 모두 만족한 와인이었습니다.

그 뒤로 파머스립 패서웨이, 투핸즈 엔젤스 쉐어 순이었습니다. 와인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엔젤스 쉐어를 맛보시곤 “어? 이거 많이 본 와인이고 많이 마셔본 맛인데?”라는 반응과 함께 반가워하면서도, 날리듀즈의 향과 맛이 좀 더 편하게 느껴졌다고 표현했습니다.

재미있었던 건 패서웨이였습니다. 가성비에 굉장히 놀랐던 와인이었죠. 가장 인상 깊었던 느낌은 ‘민트 향’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민트향이 과실 향을 덮으며 새로운 느낌을 선사했죠.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엔젤스 쉐어의 선택이 덜했던 이유로는, 과실이 덜 익은 듯한 풋내와 강한 알코올의 느낌이 첫 모금에 많이 올라왔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테이스팅을 마치고 다시 마셔 봤을 때는 호주 쉬라즈의 잘 익은 과실 향이 올라와 역시 좋았다고 하네요.

        

두 번째 테이스팅:
남호주 블랜딩 와인

두 번째 테이스팅 주제는 남호주의 블랜딩 와인으로, 와인업계 전문가들이 특히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주제였습니다. 투핸즈 브레이브 페이스(그르나슈/쉬라/무베드르), 울프블라스 실버라벨(까베르네 소비뇽/쉬라즈/말벡), 레드헤즈스튜디오 문라이터스 레드블렌드(쁘띠 베르도/말벡/메를로) 로 진행했습니다.

와인앤모어 서울숲점 양윤철 점장(마셔보고서.txt 필진)이 테이스팅을 진행하고 있다.

저는 이번 테이스팅으로 단일 품종의 호주 와인뿐 아니라, 블랜딩 와인도 맛있는 와인이 많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도 이번 주제에 더 흥미를 가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말벡과 쁘띠 베르도라는 품종의 블랜딩은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블랜딩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브레이브 페이스는 역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고객들에게 더 자신 있게 추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브레이브 페이스는 그르나슈의 붉은 베리류의 과실 향을 잘 보여주면서, 적절한 산도가 아주 기분 좋게 올라왔습니다. 과실의 향이 좋은 와인을 찾지만 어느 정도 알코올 도수도 높게 느껴지면서, 전반적으로 너무 진한 느낌은 꺼리신다면 추천해 드릴만한 와인입니다. 브레이브 페이스는 음식과의 궁합도 아주 좋은데요, 개인적으로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가지 그라탕과 곁들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양윤철 점장이 흰색 종이 위에 와인을 기울여 휴대폰 플래시를 비추어 색을 확인하고 있다.

울프블라스는 보르도의 느낌이 많이 나는 와인이었습니다. 일반인 한 분은 고추 풋내가 살짝 올라오는 거 같다고 하셨는데요. 보통 그런 향은 피라진(Pyrazine)이라 불리는 물질에서 발현됩니다. 이 향은 풀 쪽의 캐릭터라고 보면 되는데, 보르도 품종에서 많이 느낄 수 있죠. 개인적으로 피라진 캐릭터를 가진 레드 와인은 중식과 궁합이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동파육과의 조합을 추천합니다. 마라가 들어간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고 하니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겠네요.

레드헤즈스튜디오 문라이터스는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안겨준 와인이었습니다. 테이스팅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어려워했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쁘띠베르도(Petit Verdot)가 아닐까 싶습니다. 쁘띠베르도가 50% 이상 들어간 와인을 접하기란 쉽지 않은데요. 프랑스 보르도에서 재배되는 품종으로, 블랜딩으로도 많이 사용되는 재료입니다. 문라이터스를 시음한 일반인 분들은 특유의 후추 향과 매콤한 맛에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앞서 과실 향과 허브 향을 뿜어내는 와인들을 위주로 테이스팅하다 보니, 검은 계열의 베리류가 올라오는 이 와인의 무게감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을 겁니다.

호주는 와인의 다양성을 가져가기 어렵다고 생각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테이스팅을 하고 좀 더 알아갈수록 다양성을 느끼게 해주어, 편협했던 제게 많은 질책을 주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 번쯤은 매번 마시던 호주 와인 이외에, 오늘 만나본 와인들처럼 다른 와인을 한두 가지 선택해 보셨으면 합니다. 함께 마시는 분들이 많다면 재미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며 편견 없이 즐겨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번 ‘마셔보고서’를 통해 내 손에 유명한 와인이 아닌, 좀 더 흥미로운 와인이 들려 있길 바라면서…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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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철 와인앤모어 서울숲점 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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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앤모어 점장이
쓰는 게 좋아져 시작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