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앤모어 양윤철 점장의 마셔보고서.txt] 당신이 몰랐던 보르도의 숨은 보석들

여러분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 하면 어떤 와인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나요? 아마 ‘딸보(Talbot)’가 아닐까 싶습니다. 딸보는 국내에서 히딩크 감독이 좋아하는 와인으로 알려지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딸보의 출신지는 프랑스 보르도 좌안 메독 지역에 위치한 생쥴리앙(Saint-Julien)입니다. 이 출신 정보는 다른 보르도 와인을 고를 때도 매우 유용하게 쓰입니다. 이것이 와인 세계에서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떼루아(Terroir)’라는 개념입니다.

떼루아는 사실 영역, 지역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와인에서 말하는 떼루아는 그 지역의 강수량·토양·지역의 지방색 등 와인을 만드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떼루아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제도가 1930년 프랑스 정부에서 제정된 원산지 통제 명칭,  AOC(Appellation Contrôlée and Appellation d’Origine) 입니다.

프랑스 와인 구매 시 품종이 안 쓰여 있는 경우를 많이 접하셨을 것입니다. 프랑스는 AOC가 존재하기에 특별히 품종을 적어 놓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딸보의 출신지 생쥴리앙AOC는 까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를 70% 이상으로 블렌딩해서 만들고, 부르고뉴의 유명한 쥐브리 샹베르땡 AOC는 피노누아 100%로 만듭니다. 이렇게 고객님들께 안내를 해드리면서 예를 드는 것이 우리나라 김치입니다.  지역에 따라 재료가 달라지고 만드는 방식도 달라서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배추 김치가 다른 것처럼 와인도 마찬가지거든요. 이것이 AOC입니다.

보르도 좌안, 메독 지역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입니다. 지형의 높낮이와 강물의 흐름에 따라 자갈밭부터 모래 지층까지 각각의 지층이 확연히 다른 곳이죠. 메독지역에는 대표적인 산지 네 곳이 있는데요. 지역에 따라 자연환경이 달라지듯 와인의 특징도 달라집니다. ‘마고(Margaux)’ 와인은 우아하고 섬세한 매력이 있고, ‘생쥴리앙(Saint-Julien)’은 미국 와인 같은 부드러움이 있으며, ‘뽀이약(Pauillac)’은 균형 잡힌 맛을 자랑하고, ‘생떼스테프(Saint-Estèphe)’는 거친 맛이 특징이죠.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생쥴리앙의 딸보 와인을 좋아하신다면, 미국 와인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와인이 있지만, 아쉽게도 보르도 지역에서 나오는 수많은 와인 중 유독 딸보만 원하는 분이 많습니다. 마치 칠레 와인 하면 ‘1865’와 ‘몬테스 알파’만 찾고, 미국 와인 하면 ‘케이머스’나 ‘텍스트북’만 고집하고, 이탈리아 와인 하면 ‘사시까이아’나 ‘티냐넬로’만 바라는 그런 느낌입니다. 위 와인들이 나쁜 와인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진 않습니다. 단지, 딸보가 아닌 생쥴리앙 와인은 잘 마시지 않으시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죠. 더 심한 경우에는 수많은 보르도 와인 중에서도 딸보 이외에는 쳐다보지도 않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이번 시음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딸보를 최고로 선호할지’, 그리고 ‘보르도 지역의 AOC(지정산지명)별 차이를 실감하실 수 있는지’ 두 가지 의문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이번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네 가지 AOC인 마고, 생쥴리앙, 생떼스테프, 뽀이약을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모든 와인은 2017빈티지로 준비하였습니다.

참여자는 총 6명, 이 중 한 명만 와인 업계 종사자였습니다. 와인의 브랜드는 공개하지 않은 상태로 오직 AOC만 안내드리고 시음을 진행했습니다. 와인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오픈하고, 간단히 보르도 지역을 참여자들에게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와인을 오픈한 지 두 시간가량 지난 후 본격적인 시음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출전하는 보르도 와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AOC 마고 프리외르 리쉰 Chateau Prieure-Lichine 2017 / 와인앤모어 판매 중
AOC 뽀이약 랭쉬 무싸 Chateau Lynch-Moussas 2017 / 와인앤모어 판매 중
AOC 생쥴리앙 딸보 Chateau Talbot 2017 / 와인앤모어 판매 중
AOC 생떼스테프 라퐁로쉐 Chateau Lafon-Rochet 2017 / 와인앤모어 판매 중

참고로 보르도 와인은 각 샤또(와이너리)마다 독자적인 등급이 부여됩니다. 이 등급은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최초로 정해졌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보르도의 와인 등급이 이때 결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시음의 주인공들은 각각 어떤 등급일까요? AOC 마고 프리외르 리쉰 4등급, AOC 생쥴리앙 4등급, AOC 생떼스테프 4등급, AOC 뽀이약 랭쉬 무싸 5등급입니다. 생각보다 낮죠? 그러나 등급이 낮다고 해서 와인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1855년에 매겨진 등급으로 저평가되는 맛있는 와인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딸보’도 4등급이죠.

특히 보르도는 블렌딩의 마술을 보여주는 지역입니다. 주로 사용하는 품종이 있지만 그해 포도 작황에 따라 블렌딩 비율을 다르게 합니다. 작황이 안 좋은 해는 블렌딩으로 와인의 퀄리티를 끌어올립니다. 이런 와인들을 메이커가 만든 빈티지라고 부르죠.

보르도 와인 4종.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위해 라벨을 가렸다.

물론 이런 정보들은 사전에 알리지 않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모두 드시지 말고 결과를 오픈 한 다음에 다시 한번 시음하시기를 권해드렸습니다.

테이스팅이 종료된 후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참석자분들은 ‘마고는 섬세하고, 생쥴리앙은 부드럽고, 뽀이약은 균형이 좋고, 생떼스테프는 거칠다’라는 AOC의 차이를 느끼셨고, 이 점을 흥미롭게 여겼습니다. 실제로 와인 매장에서는 “전 와인 잘 몰라서 맛의 차이를 잘 몰라요”라고 말하는 고객분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분들이 와인의 향과 맛을 더 잘 느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와인을 많이 접하고 공부하신 분들은 사전에 얻은 지식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이 이번에도 잘 증명된 거 같습니다. 와인을 잘 모르신다는 참여자분들 대부분이 AOC의 차이를 느끼고 즐기셨거든요.

의외로 딸보가 높은 순위에 오르지 못한 점도 참 재밌습니다. 와인을 오픈하자 많은 분이 놀라셨습니다. 딸보의 선호도가 예상보다 낮았고, 딸보를 좋아하셔서 많이 드셔 보셨다는 분들조차 딸보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순간이 블라인드를 진행하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죠! 물론 딸보는 좋은 와인이지만, ‘보르도에서는 반드시 딸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참여하신 분 중 다수가 마고 지역의 프리외르 리쉰에 좋은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이번 시음을 통해 마고 지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평했습니다. 참석자 중에는 이전에 와인을 사러 갔을 때 ‘마고 지역은 산미가 느껴질 수 있다’는 설명을 듣다 보니 손이 덜 갔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오픈 시간과 생산자 등 다양한 요인이 적용될 수 있지만 이번 시음을 진행하면서 산도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음용하는 데 기분 좋은 정도로 느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첫 테이스팅 후 선호도가 낮았던 와인은 생떼스테프의 라퐁 로쉐였습니다. 거친 특징이 약간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라퐁 로쉐의 거친 맛이 반감되자 참석자분들은 좋은 반응을 보여 주셨습니다. 특히 “고기랑 먹으면 너무 맛있을 것 같다. 다음 시음회는 음식과 함께해달라”고 하시더군요.

브리딩* 과정에서 부드러워진 라퐁 로쉐의 경험 때문인지 “와인 오픈 시간이 짧은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오히려 좋은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와인을 소비하는 분들의 오픈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두 시간 가량의 오픈 시간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였고, 준비한 모든 와인을 동일한 환경에 동일한 방법으로 서빙하였습니다. 
* 브리딩: 와인의 코르크를 열어서 공기와 접촉시키는 것

6명의 참석자와 함께한 보르도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조금 예상 밖이었던 점은 이미 인기도 많고, 1등급 와인 3가지(샤또 무똥 로췰드, 샤또 라뚜르, 샤또 라피트 로췰드)가 생산되는 뽀이약 지역의 샤또 랭쉬 무싸가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참석자분들은 “밸런스가 잘 맞고 맛있게 마셨는데 무언가 무난하게 느껴졌다”고 평했습니다. 아마도 이건 참석자분들의 취향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석하신 분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보르도 와인의 다양성, 핸들링으로 느끼는 변화에 특히 즐거움을 표했습니다. “그동안 보르도 와인에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는데요. 심지어 “앞으로 보르도만 파헤쳐 보겠다”는 분도 계셔서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조금이나마 보르도 와인에 관심이 생기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와인앤모어에 들르셔서 다양한 보르도 와인을 탐색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발견과 흥미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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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철 와인앤모어 서울숲점 점장
마시는 게 좋아 일하는
와인앤모어 점장이
쓰는 게 좋아져 시작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