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옛 그림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네…

2016/09/06

점잖게 생긴 선비가 가만히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당비파(唐琵琶)란 이름을 가진 네 줄짜리 현악기인데요. 그 역사가 제법 깊어서 이미 신라 시대부터 널리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왼손가락으로 줄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뜯는 모습이 요즘으로 치면 기타 치는 모습과 참 비슷하지요. 맨발인 걸 보면 누구 눈치 볼 것도, 스스럼도 없이 혼자서 조용히 음악을 연주하며 한가로운 멋을 즐기고 있습니다. 마침 그림 왼쪽에 이런 내용의 시구가 적혀 있군요.

| <포의풍류도>,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7.9×37cm, 개인 소장

이런 멋스런 시구를 붙인 걸 보면 그림 속 인물은 그 시절에 한 풍류 했던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포의풍류도>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은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의 작품입니다. 실제로 김홍도는 그림 뿐 아니라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해요. 본인 스스로 음악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뤘다는 기록도 남아 있지요. 우리 미술의 역사를 통틀어 음악과 악기에 관한 그림을 가장 많이 남긴 화가가 바로 김홍도였습니다.

 

 

김홍도의 음악 사랑

그림을 본 사람들은 당비파를 연주하는 주인공이 바로 김홍도였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일종의 자화상으로 본 거지요. 연주자 앞에 또 하나의 악기가 있는데요.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관악기인 생황(笙簧)입니다. 가느다란 대나무 관 17개가 둥그렇게 박혀 있는 악기로, 화음을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우리 악기여서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해요. 김홍도 역시 생황을 잘 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생황 연주자를 따로 묘사한 그림이 어엿하게 남아 있습니다.

| <월하취생도>,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3.2×27.8cm, 간송미술관 소장

달빛 아래에서 맨발 차림으로 유유자적 생황을 부는 모습을 그렸지요. 그림 오른쪽에 이런 시구가 적혀 있습니다. “달빛이 비쳐드는 방 안에서 생황소리는 용의 울음보다 더 처절하다.” 중인 출신의 화가였던 김홍도의 울분이 담겨 있다고도 해석되는 구절입니다. 김홍도는 이 밖에도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가 생황 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한 점 더 남겼습니다. 그런가 하면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申潤福, 1758~?)의 그림 중에도 생황을 들고 있는 기생을 그린 작품이 남아 있어요.

| (좌) <송하선인취생도>, 김홍도, 비단에 수묵 담채, 109×55cm, 고려대박물관 (우) <연당의 여인>, 신윤복, 비단에 채색, 29.7×24.5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음악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김홍도의 진짜 장기는 거문고와 퉁소라고 전하는데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란 분이 자신의 문집 <청성집>에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찰방 김씨(김홍도)가 퉁소를 잘하므로 한번 놀아볼 것을 권하였다. 그 곡조는 소리가 맑고 가락이 높아 위로 숲의 꼭대기까지 울렸는데 뭇 자연의 소리가 모두 숨죽이고 여운이 날아오를 듯해서, 멀리서 이를 들으면 반드시 신선이 학을 타고 생황 불며 내려오는 것이라 할 만하였다.”

| (좌) <단원도>, 김홍도, 1784년, 종이에 수묵 담채, 135.3×78.5cm, 개인 소장 (우) <선동취적도>, 김홍도, 비단에 채색, 130.7×57.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얼마나 퉁소를 잘 불었으면 이렇게까지 극찬을 했을까요. 오른쪽 그림에는 작지만 거문고 타는 김홍도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이는 한 결 같이 김홍도 자신입니다. 이쯤 되면 김홍도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이지요. 그래서 뛰어난 김홍도 연구자였던 오주석 선생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단원은 화가이면서 취미로 음악을 즐긴 아마추어 정도가 아니라 당당한 음악가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조선 최고 연예인(?)을 화폭에 담은 신윤복

| (좌) <주유청강>, 신윤복, 비단에 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우) <청루소일>, 신윤복, 비단에 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

당시 최고의 연예인이었던 기생이 생황을 들고 있거나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림들이 더 있습니다. 국보 제135호로 지정된 신윤복의 풍속화 모음집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청루소일’과 ‘주유청강’이란 작품인데요. 기녀가 생황을 든 장면은 위에서도 보았고, 양반 댁 자제들의 럭셔리한 뱃놀이를 묘사한 오른 쪽 그림에선 한 기생이 뱃머리에 앉아 생황을 불고 있습니다. 그 자태를 어쩜 저리도 매력적으로 그렸는지요. 자고로 예로부터 먹고 노는 데 가무가 빠질 수 있나요. 악사 한 명을 더 태웠습니다. 한 젊은이가 배 한 가운데 서서 불고 있는 저 악기는 바로 대금(大笒)입니다.

 

| (좌) <무동>, 김홍도, 종이에 엷은 채색, 26.8×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쌍검대무>, 신윤복, 비단에 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의 그림에는 조선 후기의 소비 향락 문화와 남녀 간의 사랑이 실로 적나라하게 담겨 있지요. 음주가무가 주를 이루는 그림에 음악이 빠질 수 없었으니, 신윤복 역시 김홍도 못지않게 음악가들의 모습을 많이 그린 화가였습니다. 기생 둘이 칼춤을 추는 그림 ‘쌍검대무’에는 악공이 여섯 명이나 동원됐네요. 춤추는 기생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아래 악공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그렸지만, 북 치고 장구 치고 대금 부는 이들의 활기 넘치는 움직임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전해져 옵니다.

그런데 김홍도의 그림에도 여러 악공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보물 제527호로 지정된 <단원풍속도첩>에 수록된 이 그림은 ‘무동’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합니다. 춤추는 소년을 중심으로 여섯 악사가 빙 둘러 앉아 한 판 신명나게 노는 모습을 보면 절로 흥이 나지요. 피리 둘에 대금, 해금, 장구, 앉아서 연주할 수 있도록 북을 틀에 넣어 만든 좌고(座鼓)까지 동원된 춤판에 밝고 건강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 (좌) <청금상련>, 신윤복, 비단에 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우) <노상탁발>, 신윤복, 비단에 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승려들이 민가를 돌며 탁발(구걸)하는 데 절에서 쓰는 북인 법고(法鼓)가 동원됐는가 하면, 청중들을 음악의 매력 속에 흠뻑 빠지게 한 거문고 가락이 금방이라도 울려나올 듯합니다.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30점을 일일이 확인해보니 악공이나 악기가 등장하는 그림은 모두 8점이더군요. 앞에서 소개해 드린 김홍도의 작품과는 정신도 내용도 확연히 다르지만, 조선 후기의 유흥과 향락 문화 속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던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한 그림들입니다. 그래서 조선 회화로는 드물게 당당히 국보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이고요.

먼 옛날 귀하디 귀한 대접을 받은 음악

| (좌) 반구대 암각화 (우) 반구대 암각화 세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형상을 그리고 새긴 역사는 실로 유구합니다. 선사시대부터 전해오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예를 보여주는 것은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 상류 반구대 일대의 인공 호수 서쪽 기슭 암벽 위에 놀라운 그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로 약 8미터, 세로 약 2미터 바위 위에 사람부터 동물까지 갖가지 형상이 새겨진 희대의 보물이지요. 한반도의 먼 조상이 그 옛날에 이런 그림을 남겼다는 것도 경이롭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바로 선사시대의 음악가들입니다. 오른쪽 아래에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한 부분을 자세히 보세요. 길쭉한 무언가를 입에 대고 부는 사람의 형상이 새겨져 있지요. 이걸 확대해서 좀 더 가까이서 보면 영락없이 피리 부는 사람입니다.

|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 6세기, 금동, 높이 62.5cm,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국가가 어느 정도 틀을 갖추는 삼국 시대에 이르면 악기의 제작과 구성도 한층 세분화되고 정교해집니다.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의 백제 고분에서 출토된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는 교과서에도 실린 기념비적인 유물입니다. 하지만 이 유물을 자세하게 뜯어본 일은 아마 없으실 거예요.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바로 향로의 뚜껑 윗부분입니다. 여기에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5명이 새겨져 있거든요.

| 시계방향으로 배소, 북, 피리, 완함, 현금 (출처: 위례백제연구원 블로그)

왼쪽부터 첫 번째는 대나무를 옆으로 나란히 묶어서 만든 배소(排簫)라는 관악기입니다. 두 손으로 양 옆을 잡고 불었을 겁니다. 다음은 북이지요. 무릎 위에 올려놓고 왼손으로 잡은 채 오른손으로 두드리는 모습입니다. 가운데 보이는 현악기는 완함(阮咸)이라 부릅니다. 앞에서 소개한 비파의 일종인데, 여기엔 줄이 세 가닥만 그려져 있군요. 네 번째는 피리, 마지막 것은 현금(玄琴)이라는 악기입니다. 흔히 거문고라고 불리는 바로 그 악기이지요. 금동대향로에 새겨진 다섯 악사는 백제의 귀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 먼 옛날에 이토록 귀하디귀한 대접을 받았던 걸 보면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품격 높은 예술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기나긴 잠에 빠져버린 옛 악기ᆢ그러나 죽은것은 아니다

| (좌) <목양취소>, 이인문, 비단에 채색, 30.8×41.5cm, 간송미술관 소장 (우) <여동빈도>, 김득신, 종이에 수묵담채, 115.5×55.5cm

왼쪽은 양들이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 풍경을 담은 그림입니다. 양치기 소년은 커다란 너럭바위에 올라 앉아 단소를 불고 있군요. 참으로 평화롭고 고요한 정경이지요. 조용한 숲속에 가만히 울려 퍼져 메아리를 이루는 피리 소리를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때 묻지 않은 동심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따뜻한 그림이지요. 오른쪽은 조선 후기의 화가 긍재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여동빈도>란 작품입니다. 2013년 6월 KBS의 TV쇼 <진품명품>에 등장해서 감정가가 2,000만 원으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림의 주인공 여동빈은 중국 도교의 여덟 신선 중 한 명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신선이라 해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옆에서 한 명은 퉁소를, 다른 한 아이는 생황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 <사계풍속도 8폭>, 김득신, 1815년, 비단에 수묵담채

김득신의 그림을 한 점 더 만나볼까요?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일상의 풍속을 여덟 폭 연작으로 그린 병풍 그림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왼쪽에 있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갓 쓴 선비가 거문고를 뜯고 있군요. 기생 둘에 술병까지 놓인 걸 보면 양반들이 야외로 나들이를 나간 모양입니다. 거문고 역시 옛 그림에 참 많이도 등장하는 악기인데요. 위에서 소개해 드렸던 신윤복의 그림도 그렇고 거문고는 꼭 기생과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풍류 하면 거문고를 빼놓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 국립국악원 목요풍류: 오경자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전바탕

| <탄금야흥>, 백은배, 비단에 수묵담채, 23.0×30.3cm,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말기의 화가 임당 백은배(白殷培, 1820~1901)의 그림에도 곰방대를 문 남자 옆에서 기생이 거문고를 뜯는 모습이 보입니다. 김홍도와 신윤복에서 활짝 꽃을 피운 풍속화의 전통은 이렇게 조선 말기까지 도도한 흐름으로 이어졌지요. 그런 풍속화들이 남아 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음악 소리 들리는 옛 그림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것이고요. 물론 지금은 그림으로만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악기들도 있습니다. 이 글의 첫머리에 소개해드린 ‘당비파’가 대표적이지요. 이제는 박제가 되어버린 악기의 운명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단지 진열되어 있는 악기들도 인간에게 안겨서 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그 운명만으로도 아름답다. (…) 이미 연주법이 전승되지 않은 현악기들도 있다. 당비파가 그러하다. 악기는 남아 있지만 그 연주법이 전하지 않아서, 악기는 더 이상 인간에게 안기지 못하고 더 이상 소리도 내지 않는다. 이런 악기들도 그 속에 소리의 잠재 태와 소리의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는 한 죽은 악기는 아니다. 악기는 살아서, 기나긴 잠에 빠져 있다. 그러나 죽은 것은 아니다.”

그림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고 아름다운 곡조가 흘러나와 우리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줍니다. 옛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 음악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 <아악의 리듬>, 김기창, 1967, 비단에 수묵채색, 86×9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