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보름달 품은 조선백자의 꽃 ‘달항아리’

2017/06/15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눈이 시려옵니다. 까닭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요. 가만히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저리도 세상을 환히 비춰주시는 달님. 그 순결한 빛으로, 신이 빚어낸 완벽한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나를 뜨겁게 하는 달님. 창덕궁 후원 연못에 그 달뜬 얼굴을 살포시 비추는 수줍은 당신의 모습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궁극의 아름다움. 절대미의 화신. 그 어떤 표현으로도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순정한 아름다움을 지닌 당신, 보름달.

곁에 두고 아끼는 항아리 한 점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화가가 있었지요. 그분의 마음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보름달을 품은 항아리라니. 그것도 순결한 조선백자 안에서 다소곳이, 그러면서도 뜨겁게 광채를 내뿜는 그 빛이라니 말입니다. 그래서 화가는 하늘 위에 보름달 같은 항아리를 넉넉하게 그려냈지요. 그리고 어루만지고 또 그리고 어루만지고… 그렇게 화가의 그림 속에서 달을 닮은 달항아리는 주연으로, 조연으로, 엑스트라로 소품으로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수화 김환기(1913∼1974)의 그림 이야기입니다.

항아리와 매화가지, 1958, 캔버스에 유채, 58×80cm

파란 하늘을 빼닮은 배경에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매화 가지가 하나가 화면 왼쪽에서 가로로 길게 뻗어 나왔습니다. 화면 중심에는 마치 보름달이 뜬 것처럼 눈부시게 하얀 달항아리 한 점이 떠 있어요. 화가의 마음 안에서 달과 항아리는 분명 하나였을 겁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밤하늘에 뜬 보름달이 매화 가지에 걸린 모습이니까요. 김환기의 달항아리 예찬은 끝이 없었습니다. 화가의 눈에 비친 백자 달항아리는 가장 한국적인 멋이 살아 있는 소재였으니까요.

“내 뜰에는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몸이 둥글고 굽이 아가리보다 좁기 때문에 놓여 있는 것 같지가 않고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희고 맑은 살에 구름이 떠가도 그늘이 지고 시시각각 태양의 농도에 따라 청백자 항아리는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칠야삼경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중략)
어쩌면 사람이 이러한 백자항아리를 만들었을꼬……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로되 따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 김환기 1955.5

백자와 꽃, 1949, 캔버스에 유채, 40.5×60cm, 환기미술관 소장

김환기의 달항아리 그림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자와 꽃>입니다. 달항아리와 꽃이 어울린 간결한 화폭에서도 어김없이 주인공은 화면 가운데를 차지한 달덩이 같은 항아리에요. 항아리 아래 굽 받침이 있으니 달항아리를 그린 것이겠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주는 그 형상은 밤하늘을 환히 밝혀주는 둥글 보름달입니다. 김환기의 그림에 달항아리가 처음 등장한 건 1949년입니다. 그 뒤 6.25 전쟁으로 몇 년의 공백을 거쳐 1956년부터 집중적으로 달항아리 그림이 쏟아집니다. 2012년 초에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전에 맞춰 발간된 두툼한 도록을 확인해보니 달항아리가 등장하는 작품이 모두 스무 점입니다. 화풍에 변화가 생기는 1959년까지 김환기 그림의 주제는 줄곧 달항아리였어요.

(좌) 항아리, 1956, 캔버스에 유채, 100×81cm

(우) 항아리와 매화, 1954, 캔버스에 유채, 45.5×53cm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선 미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 서 있지 않을까.”

– 김환기 1963.4

한국적인 것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을 절절하게 토로한 구절입니다. 달항아리 화가 하면 김환기를 첫손에 꼽듯 우리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뼛속까지 느끼고 상찬해마지 않았던 또 한 분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혜곡 최순우(1916∼1984). 누군가 하시겠지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을 쓴 분이라고 하면 아, 하고 무릎을 치실 거예요. 사실 지금 달항아리가 이만한 대접을 받게 된 건 전적으로 최순우 선생의 공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으니 선생의 글을 다시 찬찬히 음미해 봅니다.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중략)
아무런 장식도 고운 색깔도 아랑곳할 것 없이
구워 낸 백자 항아리의 흰빛의 변화나 그 어리숭하게만 생긴 둥근 맛을
우리는 어느 나라 항아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대견함을 느낀다.”

백자 달항아리, 조선시대, 높이 46.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달항아리는 18세기, 즉 영조와 정조 임금 시기에 조선 왕실 도자기를 구웠던 관요(官窯)인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와 분원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보름달처럼 둥근 항아리를 일컫습니다. 크기에 상관없이 형태와 제작 방식이 같으면 ‘달항아리’로 부르지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달항아리 하면 보게 되는 것들은 대체로 높이 40센티미터가 넘는 큰 항아리(大壺)입니다. 위 사진 속 달항아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데요, 유물 이름이 그냥 백자호(白磁壺)라고 되어 있지만 높이가 46센티미터이니 정확히는 백자대호(白磁大壺)가 맞습니다. 우리야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것 없이 달항아리라 부르면 그만이겠지만요.

겉모습만 보면 달항아리는 비대칭입니다. 매끈한 균형과 흠잡을 데 없는 좌우 비례를 갖춘 게 아니라 좌우가 엇박자입니다. 그래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다 다르지요. 천의 얼굴을 지녔다고 해야 할까요. 왜 이렇게 됐냐면 달항아리를 한 번에 가마에서 구워낸 게 아니라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에 둘을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제아무리 노련한 도공도 당시의 기술로는 한 번에 구워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 결과 달항아리의 몸통 가운데 볼록한 부분에 이런저런 흔적이 남습니다.

이 달항아리를 한 번 보세요. 몸통의 가운데 좌우가 어색할 정도로 비대칭이지요. 이 사진은 한 각도에서만 본 모습이라, 실제로 빙 돌아가면서 보면 360도 전부 다르답니다. 그런데 달항아리는 이게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특별한 매력으로 여겨지거든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만든 것인데 무슨 장점이고 매력이냐고요? 왜 못생긴 도자기를 달항아리라고 부르면서 조선백자의 최고봉으로 다들 칭송하느냐고요? 색채도 문양도 없이 그냥 희끄무레한 빛깔에 성의라고는 도통 없어 보이는 항아리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고요?

“이웃나라 중국 자기나 일본 자기들이 그렇게 다채로운 빛깔로 온통 사기그릇을 뒤덮던 시대에
우리는 마치 산 배꽃이나 젖 빛깔에도 비길 수 있는 순정 어린 흰빛의 조화를 유유하게 즐겨왔으니
과연 한국 사람은 백의민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 하면 혹시 심미에 대한 건강한 태도가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조선 자기의 아름다움은 계산을 초월한 이러한 설명이 필요하리만큼
신기롭고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최순우

그렇다면 달항아리는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었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소장품 검색을 해보니 ‘용도’ 란에 ‘음식기’라고 돼 있습니다.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단 얘긴데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도자기 전문가로 유명한 윤용이 선생의 책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달항아리의 정확한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선 항아리를 수집하던 일본인들이
양반가의 뒤주 위에 이 달항아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이 구전되기도 합니다.
또한, 가끔 표면에 간장 얼룩 같은 이 배어 나온 예도 있어 장류를 담는 데도 일부 사용된 듯 싶습니다.”

(좌) 백자 달항아리, 18세기 전반, 높이 44.5cm, 국보 제309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우) 백자 달항아리, 18세기 전반, 높이 41cm, 보물 제143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왼쪽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국보 달항아리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국보급 달항아리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미를 자랑하는 최고의 명품이지요. 그런데 항아리 표면을 자세히 보시면 짙은 색으로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색깔로 보자면 아마도 간장을 담아 사용하지 않았는가 여겨집니다. 최근 <조선 예술에 미치다>란 책을 낸 고미술 수집가 전기열 씨에 따르면, 우리 도자기는 쓰면 쓸수록 표면에 ‘땟물’이 배는 성질이 있다고 하더군요. 항아리 표면에 바른 유약이 갈라진 틈으로 장이 스며들어 얼룩이 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또 달항아리의 또 다른 매력을 이룹니다. 전기열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월의 땟물에 의해 그릇에 얼룩이 지면서 더욱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정취가 물씬 풍겨 나온다.
그 풍취는 조선 도자기가 지닌 매력 중에 가히 최고 매력으로 손꼽을 만하다.”

만약 이 얼룩이 단점으로 치부됐다면 이 달항아리가 감히 국보 자리를 넘볼 수 있었을까요.

오른쪽의 달항아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보물입니다. 입 주둥이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역시 얼룩이 져 있지요. 마치 맛있는 음식을 실컷 다 먹고 나서 입가에 슬쩍 묻은 걸 미처 닦아내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역시 색깔로 봐선 간장 같은 장류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사실 아깝습니다. 이 멋진 항아리에 장을 담다니요. 그런데 사실 지금 우리가 고미술품으로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그 시대에는 뭔가 다 실생활에 쓰려고 만든 것들이란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후손들이 달항아리를 신줏단지 모시듯 박물관에 귀하게 모셔 놓고 감상하는 시대가 됐으니 조상님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김환기 화백과 최순우 선생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준 선각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달항아리가 대중적으로 이만한 대접을 받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에요. 지금 경복궁 광화문 왼쪽에 자리 잡은 국립고궁박물관은 2005년에 문을 열었는데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왕실 유물을 제치고 박물관 개관 기념 특별 전시회의 주인공이 된 유물이 다름 아닌 ‘달항아리’였다는 점입니다. 이 전시에 엄청난 관심이 쏠리면서 달항아리는 일약 스타급 유물로 떠오르게 되지요.

(좌) 백자 달항아리, 조선 18세기, 높이 45.0cm, 일본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우) 백자 달항아리, 조선 18세기, 높이 45cm, 영국박물관 소장

바로 그 달항아리 특별전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게 바로 왼쪽에 있는 달항아리입니다. 일본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된 이 달항아리엔 실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의 이토 이쿠타로 관장은 특별전 도록에 실은 글에서 이 달항아리에 얽힌 놀라운 사연을 소개했는데요.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원래 이 항아리는 일본의 한 사찰에 귀하게 소장돼 있었는데 1995년에 도둑이 들어 항아리를 들고 도망가다가 경비원들에게 쫓기자 그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답니다. 당연히 산산조각이 났지요.

깨진 파편만 300여 개. 사찰 측에서 이걸 가루까지 모조리 쓸어 담아서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을 했고, 미술관 측이 2년 동안 조각 맞추기를 해본 뒤 복원이 가능할 걸로 판단해 전문 복원기술자에게 맡겼답니다. 그랬더니 위의 사진으로 보시는 것처럼 6개월 만에 완벽하게 복원을 해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달항아리를 감쪽같이 되살려낸 복원 전문가의 그다음 말이 더 압권이었답니다.

“여기까지가 수리 중간단계입니다. 앞으로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디서 어떻게 보더라도 파손되었던 것을 알 수 없도록 복원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자세히 보면 복원했음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양쪽 다 가능합니다만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이 상처투성이 달항아리는 가까이서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손때 묻었던 자국에다 조각을 이어붙인 자국까지도 미세하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정도로 복원해낸 솜씨였으니 그런 흠집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었지만 박물관 측은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지요. 그것마저 그 도자기가 걸어온 역사니까요. 이런 기구한 사연 덕분에 유홍준 선생 말마따나 이 항아리는 미술품 복원의 기적이라는 칭송과 함께 전설적인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되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본의 놀라운 문화재 복원 기술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특별전에 출품된 달항아리는 모두 9점이었습니다. 출품작이 모자란 것 아닌가 싶지만 이만큼 모으기도 쉽지가 않지요. 국내외를 통틀어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달항아리는 스무 점 정도라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일본에서 온 달항아리 못지않게 관심을 끈 건 영국에서 건너온 또 다른 달항아리입니다. 저 유명한 영국박물관 한국실 전시품으로 우리 도자기에 흠뻑 매료된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Howell Leach, 1887~1979)가 1935년 한국에서 구입해 가져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며 좋아했다는 일화로 유명하지요. 이걸 1997년에 영국박물관이 구입해서 전시하고 있는 것이 오른쪽의 백자 달항아리입니다.

흔히 달항아리를 두고 백자의 제왕이니, 한국미의 극치니 칭찬을 아끼지 않은 건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아니었어요. 외국인들의 달항아리 예찬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저명한 동양미술사 학자인 마이클 R. 커닝햄(Michael R. Cunningham)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달항아리는 도자기라는 외형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한국적인 ‘목소리’의 영예로운 표상이 될 수 있다.
아니 진실로 그렇게 여겨져야 한다.
감상자의 시선에 일순간 비치는 곡선 하나에도 비범한 힘이나 또는 미묘한 굴곡의 변화가 담겨 있는,
천성적으로 인공이나 자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보기 어렵고 꾸밈없고, 확고한,
그리고 비할 데 없이 한국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뿐인가요. 앞서 소개해드린 특별전에 달항아리를 출품한 일본인 미술관장은 중국의 화려한 채색자기와 독일의 마이센 자기 등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때까지 규범으로 내려온 중국적인 조형 이념의 주술에서 해방되어
민족의 가슴속 깊은 혼의 형태가 출현한 것 같다고 해석할 수 있다.
조선 중기 백자대호의 형태는 바로 한민족이 가진 가장 뛰어난 자질이 생성해낸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좌) 백자 달항아리, 18세기 전반, 높이 45cm, 국보 제310호, 남화진 소장

(우) 백자 달항아리, 조선 18세기, 47.8×54.5cm, 개인 소장??

그래서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의 저자 안휘준 선생은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으되 우리 고유의 색깔과 독창성을 발휘해 한 차원 높은 예술성을 보여준 대표작의 하나로 주저 없이 왼쪽 사진의 18세기 달항아리를 꼽았습니다. 위 사진 속 달항아리는 앞서 소개해드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과 함께 2007년에 나란히 국보로 지정되며 달항아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지요. 앞에서도 잠깐 인용한 바 있는 도자기 전문가 윤용이 선생도 “이 달항아리가 갖는 고유의 순정성은 세계의 그 어떤 그릇과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미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상찬해 마지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달항아리는 모두 7점입니다. 우학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백자 달항아리가 가장 이른 1991년에 국보 제262호로 지정됐고, 이후 리움 소장품과 남화진 씨 소장품이 나란히 2007년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습니다. 보물은 4점입니다. 아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김영무 씨 소장품, 최상무 씨 소장품, 디아모레 뮤지엄 소장품이 나란히 보물 제1437~9, 144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지정문화재가 아닌 것까지 다 모아도 스무 점이 조금 넘을 정도여서 달항아리는 한 점 한 점이 모두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최근에 이따금씩 일본인 소장자에게서 나온 달항아리가 미술품 경매에 나오곤 하는데요.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먼저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직도 어느 일본인의 집에 잘 생긴 달항아리가 떡 하니 놓여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실제로 2015년 12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 출품된 달항아리는 한국인 소장자에게 21억여 원에 낙찰돼 국내로 돌아옵니다. 이 유물은 한 일본인 소장자가 50년 넘게 보관해오던 것인데, 워낙 아끼는 물건이라 선뜻 경매에 내놓지 않으려 했다는군요. 경매 주관사인 서울옥션이 무려 3년 넘게 공을 들여 설득했다고 하지요. 그렇게 경매에 나왔으니 우리가 그 존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고, 한국인이 낙찰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지난 5월 28일(일)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 일본인 소장자에게서 나온 또 한 점의 달항아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위 사진 오른쪽 달항아리인데요. 높이가 무려 54.5센티미터로 지금까지 나온 달항아리 가운데 최대 크기를 자랑할 뿐 아니라 보존 상태도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사진으로만 봐도 항아리 모양이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과는 조금 달라요. 대체로 달항아리는 가로 세로 비율이 비슷해서 완연하게 둥근 형태를 띤 것을 최고로 치는데, 이 달항아리는 몸통 지름보다 키가 더 커서 세로로 길쭉한 모습이거든요. 게다가 항아리 표면에 유약이 흘러내린 자국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지요. 전성기를 지난 시기에 만들어진 달항아리가 아닐까 싶은데요. 추정가 10~20억 원에 경매에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위에서 인용한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달항아리를 조선백자의 절정이자 희대의 도자 명품으로 꼽습니다. 그분들의 의견을 모두 모아서 간결하게 정리를 해본다면 결국 달항아리는 가장 우리다운 멋을 품은 그릇이 아닌가 싶어요. 어찌 보면 참 특징 없고 밋밋하고 싱겁기까지 한 항아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조선 예술에 미치다>의 저자 전기열 씨는 바로 그 ‘지극한 평범함’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달항아리는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다. 우리는 이 사실을 솔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선이든 때깔이든 평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평범함’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달항아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달항아리는 도공이 ‘하나의 마음’을 표현한 형상이다. 분별심 없는 세계, 집착심 없는 세계가 평범한 세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새삼 우리 자신들의 삶을 재확인하게 된다.”

달항아리 특유의 담백한 순정의 미는 서양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첩보영화 007 시리즈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직장 상사 마담 엠 역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낸 관록의 배우 주디 덴치(Judi Dench)를 기억하시는지요. 2009년 영국의 저 유명한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은 주디 덴치를 포함한 명사 다섯 명에게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라는 과제를 던지는데요. 그때 주디 덴치가 다른 모든 작품을 제치고 선택한 것이 바로 한국의 현대 도예가 박영숙의 달항아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 항아리는 심미적으로 매우 아름답고 정교한 세공품입니다.
세상의 근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저는 이것을 하루종일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내가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 소장품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것을 택하겠습니다.”

강익중 <삼라만상>, 1984-2014, 패널에 혼합재료, 동에 크롬도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후대의 예술가들의 눈에도 달항아리가 예사롭게만 보이진 않았겠지요. 구본창 작가는 사진으로, 고영훈 작가는 극사실회화로 달항아리의 세계를 각별하게 탐구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 작가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작품에 달항아리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아로새겨왔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새로 수집한 미술품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전시회에 강익중 작가의 <삼라만상>이 소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시장 한가운데 설치된 별도의 전시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만여 개에 이르는 작은 캔버스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마치 거대한 우주공간에 서 있는 느낌을 줍니다. 1984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30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인데요. 개개의 캔버스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만사 온갖 것들이 깨알같이 모여 하나의 조화로운 세계를 구성하고 있지요. 그 가운데는 역시 강익중 작가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그려온 달항아리가 군데군데 알알이 박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달항아리의 특별한 아름다움은 오롯합니다. 보름달처럼 넉넉한 한국인의 마음을 한가득 껴안은 채 말입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