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소장의 리테일 프리즘] 두 유통 골리앗의 비밀 프로젝트

2021/05/14

글로벌 최대 유통 공룡인 월마트와 아마존이 각각 비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비밀 프로젝트라 하면 보통은 구글의 ‘문샷(Moonshot)’ 프로젝트처럼 최첨단 신규 프로젝트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현재 두 유통 골리앗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그와 다르다. 각자 1등 영역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월마트가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글래스(Project Glass)’는 온라인 그로서리 시장에서 아마존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전체 식료품 시장에서 월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로 독보적이다. 그런데 온라인 그로서리 시장으로 넘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월마트와 아마존이 각각 30% 내외의 시장점유율로 1등의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로서리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월마트로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미국 식료품 시장은 온라인 침투율이 3.2%로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고, 구매 빈도가 높기 때문에 고객의 록인(Lock-in) 카테고리로 매우 중요하다.

월마트 그로서리 웹페이지

월마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로서리 만큼은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작년부터 비밀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020년 3월에 사내 프리젠테이션이 있었으나, 철저하게 대외비로 유지되다가 금년 3월에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의해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사내 발표자료는 자기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월마트가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고객의 정기 구매 니즈(Routine needs)에 잘 대응하고 있으나, 온라인몰에서는 고객의 긴급 구매 니즈(Immediate needs) 등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해서 고객들이 아마존으로 이탈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원인으로 느린 풀필먼트 속도, 익스프레스 배송(2시간)에 붙는 최소주문금액(35달러), 언택트 딜리버리 부족 등을 꼽고 있다.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월마트는 작년부터 배송강화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20년 9월에는 월마트 플러스라는 유료 멤버십을 도입해서 회원들에게 익일 또는 이틀내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11월에는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를 강화하기 위해 조이런(JoyRun)이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금년 1월에는 풀필먼트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자동화 요소가 반영된 로컬풀필먼트센터(LFC)를 연내 10여 곳 증설하기로 했다. 얼마 전 4월에는 차고 배송(Garage delivery) 등 언택트 딜리버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익스프레스 딜리버리 이용 시 허들로 작용했던 최소주문금액(35달러)을 없앤 데 더해 앞으로 배송 시간을 1시간으로 앞당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월마트는 이처럼 빠른 배송, 무료배송, 언택트 배송 등을 강화해서 고객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고객의 기대치에 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고객의 신뢰를 얻어서 고객의 방문 빈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고객들이 쇼핑 할 때 월마트몰을 가장 먼저 찾는 것을 하나의 습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온라인 그로서리에 있어서 월마트를 위협하는 아마존은 오픈마켓에서는 쇼피파이(Shopify)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근래 들어 미국 언론에는 아마존 셀러들이 쇼피파이로 이탈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아마존은 자사의 성장 전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오픈마켓에서 최근 진동이 느껴지자 비밀 프로젝트 산토스(Project Santos)에 착수했다. 이러한 사실은 2020년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처음 보도가 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쇼피파이의 비즈니스 모델은 아마존의 오픈마켓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쇼피파이는 셀러들이 쉽게 자사몰(D2C)을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수수료도 아마존보다 저렴하고, 고객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데이터의 소유권도 셀러가 가질 수 있다. 자사몰을 통해 브랜딩도 가능하다. 물론 아마존 플랫폼의 장점도 있다. 막대한 아마존 트래픽을 배후로 셀러들은 즉각적인 매출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아마존 플랫폼에서는 고객 데이터를 손에 쥘 수 없고, 마진이 적어서 일부 셀러들의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쇼피파이와 같은 기업들로 인해 제3지대(D2C)가 성장하면서 아마존의 입지도 이전만 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비밀 프로젝트팀의 미션은 쇼피파이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해서 유사 비즈니스를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10여 명의 임원이 참여해서 각각 기밀 유지협약(NDA)도 체결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아마존이 이런 비즈니스를 통해 아마존 오픈마켓의 셀러들에게 D2C몰을 구축해 주는 사업을 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나온다.

두 유통공룡의 사례에서 보듯이 오늘날의 비즈니스에서 영원한 제국은 없다. 비단 유통시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기술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수시로 출현하면서 기존 일등 기업들이 누리던 허니문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기술 발전, 소비자 기대치 변화 등이 비즈니스 경쟁 양상을 복잡하게 하면서 시장의 역학 구도(Dynamics)도 급변하고 있다.

고객의 니즈와 기대에 부응하는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시장은 이전보다 더 격하게 반응한다. 한 치 앞을 예단할 수 없는 역동적인 시장 환경에서 경계의 끈을 결코 늦출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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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 소장
현재에서 미래를, 미래에서 현재를 부감하며
리테일의 변화 방향을 탐색하는 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