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민 투자총괄의 벤처캐피탈 모먼트] 벤처캐피탈의 미래

벤처캐피탈 100년의 모먼트” 편부터 “2021 벤처투자 점수는요”편까지, 그동안 벤처캐피탈(VC)의 현재를 살펴보았다면, 이번 편에서는 VC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CVC와 개인 출자자의 성장

CB Insights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2021년 한 해에만 221개나 되는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가 새로 설립되어 1,7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전년 대비 2.4배 증가한 금액이다. 미국의 CVC도 많이 늘어났지만, 아시아권의 성장도 도드라진다. 아시아계 CVC는 2021년 498억 달러를 투자하여 전년 대비 2.5배가 넘는 투자금을 쏟아 부었다. 투자 건수로 보면 아시아계 CVC가 전체 투자 건의 약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다음으로 미국계 CVC가 3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 분야 중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급성장 분야로 두각을 보였다. CVC들의 투자 규모가 2019년 62억 달러에서 2021년 166억 달러로 2.7배 증가했다. 또한 리테일 분야에 아시아계 CVC가 약 117억 달러를 투자했다. 미국의 65억 달러, 유럽의 49억 달러보다 2~3배 많은 금액이다.

대표적인 CVC로는 GV(전 Google Ventures), 코인베이스벤처스, 세일즈포스벤처스, 인텔 캐피탈과 삼성넥스트 등이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기업들이 벤처투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투자 데이터분석 기관인 피치북은 2022년에 전 세계에서 CVC가 1,5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서 CVC로 분류되는 투자사 중에는 KB인베스트먼트, 컴투스 계열의 크릿벤처스 (Crit Ventures), 카카오벤처스 등이 있다. 2022년부터는 바뀐 금융지주법의 혜택*으로 대기업들의 벤처캐피탈 설립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GS는 2020년 실리콘밸리에 GS퓨처스를 설립해 투자를 시작했고, 국내에도 최근 CVC 설립을 완료하고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LG, 현대, 효성 등도 국내에 CVC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는 이미 2018년 미국에 CVC(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설립하여 ‘웨이브 (Wave)’와 ‘어메이즈VR’ 등 메타버스와 에너지 분야 스타트업에 다수 투자했다. 또, 국내에도 CVC 설립을 서두르고 있어 곧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확장할 계획이다.
* 40년만에 전면 개정된 공정거래법 시행에 따라 대기업의 CVC 진출이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대기업들만 벤처투자에 나선 것이 아니다. 벤처투자에 나서는 개인 출자자들도 많이 늘어났다. 특이한 점은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조합을 결성해서 투자하는 간접투자 방식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2021년 개인 투자조합 신규 결성액은 6,278억 원, 결성 조합 수는 910개로 전년 대비 거의 2배가 늘어났다. 4년 전과 비교하면 결성액은 7배, 조합 수는 5배 이상 증가했다. 2021년 신규 투자 금액도 4,013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는 스타트업 열풍과 대체투자에 대한 관심, 세제 혜택 등이 개인들의 벤처투자 관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나타낸다. 개인은 벤처투자조합 또는 개인 투자조합에 출자하면 3천만 원까지 전액 소득공제를 받는다.

         
실리콘밸리를 넘어 아시아로 중심 이동

소위 FAANG* 또는 MANTA**로 불리는 실리콘밸리 또는 미국 서부지역의 스타트업으로 대표되는 벤처투자의 중심이 실리콘밸리 밖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 텍사스 등이 스타트업 유치에 앞장서고 있고, 그에 따라 벤처투자자들도 이들 지역 투자를 늘리고 있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뉴욕, 텍사스 등이 스타트업 유치에 앞장서는 중이고, 그에 따라 벤처투자자들도 이러한 지역에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 FANNG: 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을 지칭하는 약어
** MANTA: Microsoft, Apple, Nvidia, Tesla, Alphabet을 지칭하는 약어

또한 미국의 벤처투자자들이 미국 외 지역에 대한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2021년 11월까지 미국의 벤처투자자들은 미국 외 지역에서 4,600곳이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며 2020년 3,500여 건을 이미 한참 추월했다.

글로벌 VC들의 2021년 투자 지역을 보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유럽, 남미 등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아시아 지역에 대한 투자는 1만 2,400여 건으로 미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건수보다 높다. 2020년 대비 42%나 늘면서 벤처투자자들의 인기 지역이 아시아로 넘어오는 모양새다.

특히 리테일테크 분야의 투자는 아시아 지역이 108억 달러로, 미국의 99억 달러를 앞서며 가장 큰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한국 VC들도 해외투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소프트뱅크벤처스 코리아는 사명을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로 바꾸고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동남아 투자를 이어가고 있고, 최근 컴투스 계열의 벤처캐피탈 크릿벤처스는 LA에 사무실을 열었다. GS는 수년 전부터 ‘럭스테이(LUXSTAY)’등 동남아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 왔다. 한국투자파트너스, 다올인베스트먼트 등 전통 VC들도 동남아시아 지역 투자를 늘릴 계획으로 알려졌다.

         
Web3,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전문투자사도 늘어

지난 몇 년간 광풍이 불었던 블록체인, 크립토 열풍에 VC도 예외일 수 없다. 이들 분야에 대한 투자는 2021년 한 해에만 300억 달러를 넘었고, 이는 전년 대비 5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2015년 Digital Currency Group이 2,500만 달러 규모의 크립토 전문 펀드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꽤 이슈가 되었지만, 그 이후 앤드리슨호로위츠 (Andreessen Horowitz 또는 A16Z), 멀티코인캐피탈(Multicoin Capital) 같은 전통 VC, 신흥 VC 등이 1조 원이 넘는 대형펀드를 속속 만들면서 2021년 말 전체 조성된 펀드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6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A16Z는 전통 VC 중에서 특히 Web3*, 크립토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2013년 코인베이스에 대한 투자를 시작으로 관련 기업과 가상화폐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고, 2021년에는 22억 달러 규모의 대형 크립토 펀드를 조성해서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웬만큼 알만한 크립토 프로젝트에는 A16Z가 투자 안 한 곳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소프트뱅크 그룹도 샌드박스, Digital Currency Group 등에 투자하며 크립토 투자를 확장하고 있다.
*Web3: Web2.0을 넘어 데이터를 사용자가 직접 소유, 관리하는 차세대 웹

신흥 VC들의 활약도 놀랍다. 멀티코인캐피탈, 코인베이스벤처스,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Grayscale Investments) 등 가상화폐, 블록체인 분야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투자사가 등장했다. 국내 VC로는 해시드가 이 분야에 앞서고 있다. 해시드는 디센트럴랜드, 샌드박스, 액시 인피니티 등에 투자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두나무파트너스, 카카오벤처스 등이 VC로는 크립토 투자에 적극적이다. 다만, 국내 VC의 경우는 아직 관련 법 제도가 정비되지 않아 펀드에서 직접 가상화폐에 투자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DAO* 등 새로운 형태의 VC 투자도 등장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액셀러레이터이자 벤처투자회사 와이콤비네이터 (Y Combinator)는 Orange DAO라는 창업자-투자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는 드롭 박스 등 이미 성공한 포트폴리오 회사의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YC Gem이라는 NFT를 발행하고, 이를 통해 초기 창업자들과 연결하여 여러 도움을 주거나 별도로 YC가 운용하는 Orange fund에서 투자하는 구조다. 이와 유사하게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도 DAO를 활용한 커뮤니티 활동에 열심이다. 이 회사는 최근 BessemerDAO를 만들어 창업가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운용 중인 펀드에서 우수한 가상화폐, NFT, DeFI, Web3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DAO: 탈 중앙화된 자율 조직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이처럼 VC는 시장과 스타트업의 니즈에 맞게 계속 학습하고 변화한다.

         
VC는 스타트업이 만드는 혁신을 가속시킨다

80여 년 전 스탠포드 학생들이 창업한 HP의 오실레이터 기술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쓰이면서 현대의 실리콘밸리가 탄생했다. 그 이후로 반도체 기술의 발전으로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Fairchild Semiconductor)와 인텔이 생기고, 또 이들이 쌓아놓은 기술을 발판 삼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했으며, 이들 어깨 위에서 구글과 Space X도 등장했다.

이런 창업가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려면 벤처캐피탈리스트들도 숨 가쁘게 같이 뛰어야 한다. 벤처캐피탈리스트는 늘 열린 마음으로 같이 배우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혁신의 속도는 조절할 수 있어도, 한 번 정해진 혁신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무척 어렵다. VC이 지금 투자하고 있는 AI, 자율주행, 로봇, 유전자기술, 메타버스와 가상화폐가 위험해 보이지 않냐고? 1980년 애플이 공개시장에 상장되고 1956년 포드자동차의 상장 때보다 많은 공모금을 모으자 매사추세츠주는 애플이 “매우 위험한 투자”라며 투자자들에게 경고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아마 10년 후 스타트업과 VC가 만드는 세상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 예상하며 글을 마친다.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투자담당 총괄
#창업가에서 #투자자로 #스타트업흰머리아저씨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